칼럼읽다

‘킬러 문항’ 해결을 위한 발상의 전환

닭털주 2023. 7. 19. 11:29

킬러 문항해결을 위한 발상의 전환

 

우희종 칼럼

 

 

요즘 킬러라는 수학능력시험(수능)의 고난도 문항을 살펴보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고교생들이 강남 대치동 사교육 현장에서 저런 문제를 풀고 있다니, 그래서 고액 과외를 하고 수도권이나 지방에서조차 저녁과 주말을 이용해 대치동으로 몰린다니, 또 그런 문제를 풀어주는 일타강사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니, 새삼 세상 많이 바뀐 것을 느낀다.

그런 강남 사교육 흐름에 자식을 합류시키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다 보면, '영끌'이라도 해서 집 장만이 시급한 젊은이들에게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으라고 하는 것은 폭력이 아닐 수 없다.

사회 고질병이 된 저출산에 직접적으로 영향 미치는 국내 사교육에 대한 획기적 대안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한편, 현 정부는 국민과의 충분한 소통과 검토 없이 불쑥 킬러 문항유죄론을 던지고 대책없이 몰아붙이고 있다. 진영 논리를 꺼내 들어 사교육 시장 종사자들을 정치적으로 몰아가기까지 한다. 사교육 정상화를 위해 킬러 문항을 꺼낸 취지가 의심될 수 밖에 없다. 사교육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라면서 자사고, 외고, 국제고 등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다르지 않다.

결국 현 정권의 이번 킬러 문항논란은 고질적인 사교육 현실에 대한 대응이나 대책 마련보다는 정치적 지지율을 염두에 둔 정치쇼에 가깝다. 그렇다고 우리들조차 이번 문제를 두고 현 정권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된다.

그것은 국가 대계인 교육문제를 그들과 같이 정치적으로 취급하는 것에 불과하다.

본격적인 사교육 문제 해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과도한 고난도의 시험문제는 오직 대입에서의 변별력 필요성 때문이다.

그런 변별력은 서열화된 국내 대학을 전제한다.

수직적으로 서열화된 대학이 있는 한,

그리고 출신 대학의 학연을 따지는 문화가 있는 한, 과열된 사교육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다양한 개성의 학생들을 시험의 변별력 하나로 재단하고 틀에 끼워 맞추는 것을 수용하고 있는 우리들의 왜곡된 인식도 반영한다.

 

사교육시장 불을 떼는 것은 대학 서열화와 학연

 

불가의 전등록에는 한로축괴 사자교인(韓盧逐塊 獅子咬人)’이란 말이 있다.

개에게 돌을 던지면 개는 날아오는 돌덩이를 쫓아다니지만,

사자는 날아오는 돌이 아니라 돌을 던지는 사람을 문다는 말이다.

사건이나 상황의 지엽보다는 근본적 대응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킬러 문항이나 거론하며, 일타강사나 운동권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한로축괴와 같은 모습이다. 끊임없이 날아오는 돌들의 하나인 킬러 문항을 조정한다고 사교육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며, 교육 전문가들 사이에도 뚜렷한 개선책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돌을 쫓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사자를 잡아야 하고, 개선이 불가능하다면 개혁이다.

우리 사회의 사교육 현황은 개선보다 개혁이 절실하다.

지금 상황에서 사자에 해당 되는 것이 서열화된 대학이라면,

대학 서열 타파야말로 공교육 황폐화와 사교육 창궐에 대한 대책이다.

이에 인구 감소를 고려한 대학 서열화 개혁으로는 다음 두 방식을 제안한다.

 

먼저 과거에 경험했던 졸업정원제 재도입이다.

공교육만의 수능으로 일정 수준 이상이면 누구나 입학을 자유롭게 하여 대학 서열을 무너뜨리되, 대학 학부에서 타 대학으로의 전학을 자유롭게 해 준다.

수능 변별력을 대학의 학습 능력으로 대신하게 하고 학습 부진 학생은 자연스레 탈락해 다른 대학으로 가게 한다. 나름 대학 서열이 생길 수는 있으나 전공 내지 과별로 다를 것이요, 교수의 강의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과 같은 획일적 대학 서열은 형성되기 힘들다.

서구 사회의 사례와 함께 40여 년 전과는 전혀 다른 사회 구조와 대학 여건을 지닌 지금, 충분한 검토와 보완을 거친다면 고려할 만한 제도다.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이미 과거 많이 있었기에 생략하지만, 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통폐합과 같이 갈 때 효과적이다.

 

졸업정원제와 비대면 사이버 대학이라는 발상의 전환

 

두 번째 개혁 방안은 국내 대학 학부 과정 전체를 해체한 후 그에 상응하는 열린 비대면 사이버 대학의 무료 국가 운영이다. 국민 누구나 언제고 등록 가능하며, 자신에게 필요한 전공 과목을 비대면으로 이수한다. 이미 2020년 교육부는 일반 대학에 대한 원격수업 규제를 없앴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열린 사이버 대학에 속한, 전공별 교수단이 결성되어 모든 것을 온라인 무료 공개 강의로 한다. 이와 같은 방식은 기존 방송대학만이 아니라, 지난 2021년 포스텍(포항공과대)이 이집트 정부와 디지털 이집트 개발자 양성사업(DEBI)’ 협약을 맺어 온라인으로 이집트 학생에게 공학석사 과정을 제공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런 개혁 방식으로 법전원뿐만 아니라 모든 대학 전공 분야에 있어서 국가 교수단을 꾸려 사이버 비대면 수업 형태로 공개한다. 재정은 교육부의 기존 대학 지원 예산으로 충분히 충당 가능하다.

 

국민은 누구나 생애 중에 언제고 등록할 수 있고, 수강 가능하다.

이처럼 대학 교육의 사이버 공개는 고교 무상 교육을 넘어 대학 무상 교육이고, 언제고 수강 가능하기에 국민 평생 교육이기도 하다.

회사는 응모자의 출신 대학이 아니라 이수한 전공 분야만 고려하면 된다.

실습이 필요한 학부 전공은 전국 각 지역 별로 설치된 실습소에 신청해 이수하게 하고(이는 조만간 인공지능 장착 로봇이 조교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 학위는 특정 학점을 이수한 이를 대상으로 국가가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졸업시험 통과자에게 주면 된다. 한편, 학문 후속세대를 양성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춘 대학은 대학원 대학으로 전환해 고급 인력을 양성한다. 일부 교수들은 분야에 따라 정부나 기업 부설 연구소 형태로 수용하도록 한다.

 

이와 같은 지식 공유에 기반한 고둥교육 시스템을 채택함으로써 요즘처럼 취업 대기 목적으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상황도 줄일 수 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미래 고등 교육 체제로 충분히 고려할 만하며, 과열된 입시 사교육 개혁과 함께, 대학 학벌이 젊은이들의 평생 족쇄가 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이런 개혁을 시작하려면 많은 사전 검토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굳이 200여 년 된 서구 대학체제를 포스트휴먼이 거론되는 지금에도 무턱대고 유지할 이유는 없다. 사교육은 학력과 부의 세습 수단이 되었고, 대학은 지원금/연구비 등으로 정치 권력의 눈치보는 집단으로 전락했다.

특히 사학법으로 보호받고 있는 많은 사학재단의 문제도 여전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변별력이라는 고정관념에 갇혀 있지만, 사교육은 저출산과 강남 부동산가격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이다. 이를 방치하거나 부분 개선을 통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은 버릴 때가 되었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사교육 현장은 반드시 변해야 하고, 이는 대학 체제의 근본적 개혁으로만 가능하다.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