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노인이 부끄럽다

닭털주 2023. 8. 8. 15:20

노인이 부끄럽다

 

강기석 칼럼

 

 

부끄럽기 짝이 없는,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게 부끄럽다는 것을 모르는 대통령의 온갖 우행과 기행, 만행으로 인해 국민으로서 내가 대신 부끄러웠는데, 이젠 노인회 회장 김호일이란 인물의 언행으로 인해 노인으로서 내가 대신 부끄럽다.

남이 일부러 나를 화나게 하려고 격한 말을 쏟아부었다면 또 모를까,

정치적인 행사에서 나름대로 합리성을 갖추고 공개적으로 한 발언에

무얼 그리 벼락같이 화를 내는 퍼포먼스를 펼쳐야만 했을까.

더구나 그 퍼포먼스란 것이, 사과하러 온 인물의 사진을 준비했다가 그 사진을 때리는 폭력적이고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나름 민주시민의 양식을 잃지 않고 너그럽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늙어가려고 노력 중인 노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보상과 기대가 엇나갈 때 파탄 나는 갑을 권력관계

 

나는 웬만한 인간관계는 권력으로 맺어진 관계라고 본다.

부부간 관계, 자식과 부모 간의 관계, 아주 가까운 친구 관계 등을 제외한

일반적인 사람 관계는 누가 더 많은 권력을 행사하느냐는 갑-을 관계라 보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갑과 을이 서로 무엇을 주고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관찰하는 것이 내 취미의 하나다.

때때로 부부간, 자식 부모 간에도 그런 권력관계가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갑은 을에게 돈과 안전(보호)을 주고 을의 충성과 헌신을 기대하는데,

문제는 그것이 늘 엇박자가 난다는 것이다.

갑이나 을이나 때때로 자기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적다는 느낌을 갖는 것인데

그것이 어떤 한계점에 이를 때 갑을 관계가 바뀌거나 파탄이 나는 것이다.

 

(개똥) 권력관은 개인 간 관계를 관찰하는 데에 머물고 있지만 이를 사회 모든 조직 간, 혹은 세대 간에도 연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즉 노인세대와 청년세대를 갑을 권력관계로 분석해 보면 어떨까?

나는 민주당 혁신위원회 김은경 위원장의 둘째 아들이 중학교 1학년인지, 2학년 때 왜 나이 드신 분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해?”라고 엄마에게 질문하고, 자기가 생각할 때는 평균 여명을 얼마라고 보았을 때 자기 나이부터 평균 여명까지 비례적으로 투표하게 해야 한다고 부연 설명한 것이 바로 그 갑을 권력관계에 근접한 논지라고 본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의 말이 되게 합리적이라는 김은경 위원장의 평가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박사 학위자에겐 100표를 더 주고 석사 학위자에겐 10표를 더 줘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자산 10억 단위로 1표씩 더 줘야 한다는 주장까지 봇물이 터질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학 2년생의 논지와는 정반대로, 노인들은 경험이 많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표를 줘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11표제가 확립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 문제는 결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는, 그저 중학 2년짜리 철부지의 궁금증일 뿐이다. 나 역시 중학 2년짜리 아이와 다른 식으로 동조하는 심정이었는지, 한 사석에서 “18세까지 투표권을 안 주는 똑같은 논리로 100-18, 82세부터는 투표권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과감한 농담을 던져 비난과 웃음을 동시에 산 적이 있다.

 

수구언론이 부추긴 노인세대의 갑질

 

그렇게 받아들이면 될 이야기였다.

더구나 김 위원장은 11표제 아래에서 미래세대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투표장에 젊은 분들이 나와야 의사가 표시된다는 탁월한 결론으로 자신의 발언을 마무리 짓지 않았는가. 노인의 선거권을 차별하자고 한 적도 없고 노인 폄하를 의도하는 취지도 아니다.

 

그럼에도 김호일 회장이 발끈한 것이야말로 노인세대의 대표적 갑질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수구언론이 그들과 같이 늙어가는 노인세대의 갑질을 부추긴 결과이기도 하다.

갑을 관계의 또 하나 특징은 어떤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늘 갑이 그 의미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을을 위협하고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나이는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하나의 상수(장유유서)로 노인세대는 나이를 먹었다는 것 자체로 늘 갑 행세를 했고 변화에 저항해 왔다.

 

문득 지난 2월 칠순을 맞아 내 SNS에 올린 글이 떠오른다.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이란 제목의 글에서 나는 오늘은 내 칠순 생일이다. 회갑 때도, 지공(65) 때도 별로 세월을 의식하지 않았는데 칠순의 감회는 확실히 다르다면서 사실 칠순이 별 기념하거나 축하할 일도 아니다. 그저 이젠 진짜 늙었다는 증명인 것이다. 요즘처럼 칠십대가 통으로 욕먹는 세태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토로했다.

 

이어 칠십대는 어느 정도 세상일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고(從心) 점점 더 너그러워질 나이인데 오히려 강퍅하고 욕심부리고 아집만 내세우는 세대가 돼버렸다. 욕먹어도 싸다.() 앞으로 십 년을 살든 이십 년(?)을 살든 () 죽을 때까지 정신건강을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좋은 말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소리를 한 적이 있다.

 

또한 탐욕 아집 오만 뻔뻔함내 주변의 숱한 칠십대처럼 살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한다.

이 자들은 변할 가능성도 거의 없고,

내가 그들을 감화시켜 새사람 만들 힘도 없으므로

그저 이런 자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가급적 건강한 후배들과만 히히덕거리며 욜드(Young Old)으로 살고자 한다.

 

말하자면 칠순에 새삼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인데 그것이 가능할까?

만사 잘난 척하지 말고 겸손하면 가능하다고 본다.

고개 바짝 치켜들면 망하는 건 골프와 선거뿐이 아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입이 근질거려도 겸손, 또 겸손해야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죽음 앞에서도 겸손해져 이젠 살 만큼 살았다는 생각도 들겠지'라고 내 남은 인생의 방향을 정리한 바 있다.

 

절대로 노인회에 가입해서는 안 되겠다,

탐욕 아집 오만 뻔뻔함에 폭력성까지 겸비했으니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