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소리야? [말글살이]
뭔 소리야? [말글살이]
수정 2025-05-15 23:26등록 2025-05-15 17:13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소리가 숙제다. 나는 귀가 어두워 뉴스라도 들으려면 다른 사람보다 볼륨을 서너칸 더 올려야 한다. 난청을 방치하면 치매 위험이 다섯배나 높다고 하던데, 잘 못 들으니 이해력도 떨어지고 기억력도 꽝이다. 말귀를 못 알아들어 상대방이 한 말을 되묻곤 하는데 ‘관심과 애정 부족’이라는 항의를 받기 십상이다.
‘종소리, 물소리, 풍경 소리’처럼 물체에서 나는 ‘소리’(음향)는 물리적 현상으로 말 그대로 소리일 뿐이다.(그런 소리에조차 ‘뜻’이나 ‘의도’를 갖다 붙이니 피곤하지.)
사람 입에서 나는 ‘소리’(음성)로 눈을 돌리면 달라진다.
잘 알다시피 말은 소리와 뜻이 합쳐져서 이루어진다.
안개같이 흐물거리는 뜻은 소리에 올라타지 않으면 전할 방법이 마땅찮다.
말하는 이유가 뜻을 전하기 위해서라지만 소리에 우선권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소리+뜻=말’이라는 공식은 쉽게 ‘소리=말’로 바뀐다.
소리만으로 말을 뜻하게 된다.
‘뭔 소리야?’라는 말은 상대방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물을 때 자주 쓴다. 말뜻도 알아들었지만 말의 내용에 동의하기 어려울 때도 쓴다. ‘그런 소리 말라’거나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쓰인 소리도 뜻이 포함된 ‘말’의 반열로 격상된 ‘소리’이다.
‘소리’ 앞에 다른 말이 와서 굳어진 말을 보면, 열에 아홉이 부정적인 뜻을 갖는다.
‘헛소리, 허튼소리, 딴소리, 군소리, 찍소리, 큰소리, 뻘소리, 볼멘소리, 앓는 소리, 우는소리’, 그리고 ‘개소리’까지.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다 이런 거밖에 없나 싶을 정도이다.
‘좋은 소리’보다는 ‘거북한 소리’가 마음에 더 남기 때문이겠거니 한다.
호기롭게 한소리 할라치면 잔소리 그만하라는 핀잔만 돌아온다. 소리가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