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다
누가 너더러 시쓰래?
닭털주
2025. 5. 29. 16:32
누가 너더러 시쓰래?
박노식
여럿이 국밥을 먹는데 잘 안 들어간다
특도 아니고 보통인데도 그렇다
남들은 술잔은 돌려가면서
게걸스럽게 입을 벌리고 농을 던지고
물티슈로 얼굴과 목덜미까지 닦아내는데
식어가는 국밥 앞에서
내 이마엔 식은땀만 송골송골 맺히고
개미가 등을 물어뜯는 순간처럼
온몸 여기저기서 따끔거린다
이들 중에 내 시집을 구매한 자는
한 명도 없고, 하지만
나는 국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으며 속으로 시 한 편씩을 외웟다
국밥 한 그릇이 9,000원, 시집 한 권이 9,000원
나는 내 길을 가고 있을 뿐인데
어째 좀 서러운 느낌이 스멀스멀 콧등으로 올라온다
그렇게 시 열편을 외우는 동안
이들은 소주 열 병을 비우고
국밥 한 그릇을 추가했다
반절도 더 남은 국밥 속에서 창백해져 가는
내 얼굴을 그대로 묻어둔 채 밖을 보았다
창 너머 행인들이 나를 힐끔거렸다
껌을 씹는 것인지
사탕을 오물거리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입술들이 자꾸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게 누가 너더러 시 쓰래?’
‘누가 너더러 시 쓰래?’
‘너더러 시 쓰래?’
‘시 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