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손톱의 때 [말글살이]

닭털주 2025. 6. 6. 10:23

손톱의 때 [말글살이]

 

수정 2025-06-05 18:49 등록 2025-06-05 17:36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비슷한 말. 발톱의 때.

나의 은사님은 은퇴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경기도 가평 율길리로 들어가 포도 농사꾼이 되었다.

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일하다가 해질녘 막걸리 한 사발로 목을 축이며 지친 몸을 달랜다.

미끈한 도시 서울에 올 때면 제일 신경 쓰이는 게 손톱에 낀 때.

힘겨운 노동이든 신나는 놀이든, 사람이 땅과 어울렸다는 흔적.

비누칠을 해도 잘 빠지지 않는다.

나도 톱질이든 텃밭 일이든, 뭐라도 작은 일을 할라치면 어김없이 손톱 밑에 때가 낀다.

밥숟가락을 들다가도 슬며시 상 밑으로 손을 내려 파내게 된다.

 

말에는 그것을 쓰는 사람들의 오래된 생활 방식과 생각이 담기게 되는데, 관용어는 그런 점을 더 잘 보여준다.

시험에 떨어진다는 뜻인 미역국을 먹다는 미역에 대한 우리의 경험이 녹아 있고,

장사가 잘 안된다는 뜻의 파리 날리다도 발길이 뜸한 가게 안을 얄밉게 날아다니는 파리를 향한 주인장들의 눈썰미가 쌓여 만들어졌다.

 

손톱이 깨지거나 빠져본 사람은 그 소중함을 알겠지만, 평소에 손톱은 손가락 끝에 당연히 붙어 있어야 하는 작고 사소한 것. ‘인정머리가 손톱만큼도 없다에 쓰인 손톱만큼도조금도라는 뜻인데, 한발 더 나아가 나를 손톱의 때만큼이라도 생각해?’라고 하면 자신을 무시하는 상대방을 향한 분노의 정도가 더 강해진다.

급기야 손톱의 때를 사람에게 쓰면 그를 보잘것없고 쓸모없고 만만한 존재로 취급한다는 뜻이다. ‘나를 손톱의 때로 보냐?’고 하면 나를 장기판의 졸로 보지 말라는 항의의 표시가 된다.

 

새 정부는 자기 몸을 움직여 살아가는 노동자들을 손톱에 낀 때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세상을 손톱만큼만이라도 바꾸길 빈다. 어느 누구도 손톱의 때일 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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