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놀이

왜 우리는 ‘불’을 끈다고 할까

닭털주 2025. 6. 16. 10:34

왜 우리는 을 끈다고 할까

 

수정 2025.06.15 20:56

 

김선경 교열부 선임기자

 

 

‘Turn off the light.’ 우리말로 불을 끄세요.

영어 ‘light’이지만, 우리는 조명을 켜고 끄는 행위를 과 연결해 표현한다.

‘fire’인 영어권에서는 우리말 불을 끄세요를 듣고 전등이 아닌 다른 을 상상하며 의아해할 수도 있다.

 

이러한 언어적 특성은 우리말 의 의미가 확장된 사실과 관련이 있다.

과거 옛사람들에게 은 어둠을 밝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등잔불, 촛불, 호롱불 등 밤을 밝히던 거의 모든 조명은 불을 사용했다.

이 동일시되던 언어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전기 조명을 끄는 행위마저도 불을 끈다고 말한다.

자동차 연료가 바뀌어도 습관적으로 기름을 넣는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마찬가지로 수백년간 을 내는 동력이었기에 그 관습이 언어에 깊이 뿌리내렸다.

 

이렇게 은 단순히 어둠을 밝히는 의 역할을 넘어, 우리 조상들의 삶 깊숙이 자리 잡았고, 그 중요성만큼이나 다양한 의미로 확장되어 우리말 속 수많은 속담과 관용 표현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그 예로, 등잔불이 주변을 밝히지만 바로 아래는 어둡다는 의미의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가까운 일이나 사람 사정을 오히려 잘 알지 못한다는 삶의 지혜를 담고 있다.

 

촛불이 바람 앞에 놓인 듯하다는 위태로운 상황을 묘사한다.

작은 촛불이 바람에 쉽게 흔들리고 꺼질 수 있는 모습에서 삶의 불안정성을 잘 보여준다.

촛불처럼 빛을 내던 초롱불에도 선조들의 지혜가 배어 있다.

남을 위해 초롱불을 켠다는 남을 돕는 일이 결국 자신에게도 이로움을 준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은 단순히 ‘fire’의 의미에 머무르지 않는다.

조상들의 생활 방식과 지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담고 있는 다층적인 언어다.

이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쓰는 말 속에도 깊은 의미와 통찰이 깃들어 있다.

언어는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정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거울이자 보물창고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