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함윤이의 ‘지금, 이 문장’

닭털주 2025. 4. 27. 20:00

함윤이의 지금, 이 문장

수정 2025-04-27 09:46 등록 2025-04-27 06:00

 

 

 

낯선 도시에 머물기.

이는 새로운 길과 건물을 발견하거나 거닐며 특정한 지리에 녹아드는 과정을 의미한다. 동시에 한 장소에 누적된 문화와 역사, 즉 계속해서 쌓여왔고 지금도 쌓이는 중인 시간의 요소로서 자기 자신을 변모시키는 일을 뜻하기도 한다.

 

시에나에서의 한 달의 저자, 히샴 마타르가 낯선 도시에서 한 달을 머물고자 결심한 까닭은 그가 오래도록 시에나 화파의 그림에 품은 관심 때문이며, 그만큼 긴 시간 자신 안에 고여온 상실과 마주하기 위해서다.

저자의 상실은 그가 열아홉살 적 리비아 독재정권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납치된 아버지의 실종에서 비롯되었다. 시에나는 아버지의 존재 그리고 부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도시임에도, 그곳에 다다른 순간 저자는 계속해서 자신을 기다린 공간에 도착했다고 느낀다.

 

시에나 화파의 그림은 도시와 마찬가지로 겹겹이 쌓인 시간을 껴안고 있다.

저자는 과거의 그림들을 찾아가 그 앞에 머물며 또 다른 시간의 층이 쌓이는 순간을 응시한다. 시선과 침묵 속에서 그와 그림 사이에는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 이처럼 정적인 방식의 관계 맺기는 저자가 시에나에서 만난 장소와 언어, 사람들 사이에서도 적용된다. 그는 눈앞의 현상에 곧장 발을 내딛거나 현재를 섣불리 미래로 끌고 가는 대신에 한자리에 멈춘 채 끊임없이 움직이는도시의 변화를 체감하며, 변화는 시에나의 한 요소로 틈입한 저자에게도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표지부터 도판까지 낱낱이 아름다운 이 책은 존재 그리고 부재와 눈 맞추는 시간이 어떻게 우리 안의 변화를 추동하는지 기록한다. 때때로 이 변화는 우리를 구해내며, 그로써 또다시 도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물론 그사이에도 새로운 관계는 싹트고 있다.

 

함윤이 작가

 

함윤이 l 202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4회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위도와 경도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