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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음

남아 있음 수정 2026.09.16 20:13 오은 시인 급하게 달려왔지만, 마지막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 허탈한 마음으로 뒤돌아섰다. 그제야 막차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맞이방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숨을 헐떡이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빛이 깊고 아득했다. 아직 오지 않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일까, 별수 없이 아침 첫차를 타고 떠나려는 사람일까, 혹시 갈 데가 없는 사람이면 어쩌나. 어떤 경우든 애타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숨을 고르기 위해 나도 잠시 의자에 앉았다. 그제야 맥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왜 조금 더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을까. 혹시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좋아하는 사람들,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 좋은 일을 축하하는 목적 등 삼박자가 어우..

칼럼읽다 11:47:02

밤에는 밤 낮에는 나물

밤에는 밤 낮에는 나물 수정 2026.10.07 20:21 양다솔 작가 서울로 돌아갈 때 엄마가 뭔가를 잔뜩 싸주었다. 집에 와서 보니 고사리와 아주까리 나물이 비닐봉지에 담긴 채 퉁퉁 불어 있었다. 바로 꺼내서 먹으면 되는 반찬이 아닌 말린 나물을 굳이 불린 것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나 양다솔, 출가외인으로 10년간 살림하며 깨달은바 이것은 시한폭탄이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도착했니?” 나는 말했다. “이 젖은 나물은 뭐야.”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추석 내 무쳐둔 나물을 하도 잘 먹기에 새로 해서 싸주려고 나물을 불렸는데 그만 내가 갈 시간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잘 짜서 뭘 넣고 뭘 넣어 볶기만 하면 금방이라고 했다. 나의 지친 몸을 통과한 모든 말이 한 귀로 흘러 나갔다. 엄마가..

칼럼읽다 11:38:42

중간에서부터 시작하세요

중간에서부터 시작하세요 수정 2026.10.14 20:07 오은 시인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앤 카슨이다. 내게 그는 장르를 초월한 작가다. 카슨의 작품은 시인가 싶다가도 산문 같고, 에세이인데 논문처럼 깊었다. 논문이지만 딱딱하지 않고 유연했다.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은 언어, 그리고 그 언어가 빚어내는 리듬이었다.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여러 채널에서 그의 인터뷰가 소개됐다. 수상 직후 행해진 인터뷰도 인상적이었지만, 과거에 강연 등의 행사에서 이뤄진 인터뷰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글을 대하는 태도가 삶의 지향점과 일치하는 사람을 본 듯도 했다.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그것은 인생의 과업이다.” 이 말은 그의 첫 시집 짧은 이야기들>(난다, 2025)의 서문에..

책이야기 11: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