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교과서 현진건 소설 유감

닭털주 2026. 4. 13. 18:05

교과서 현진건 소설 유감 [똑똑! 한국사회]

수정 2025-06-11 19:45 등록 2025-06-11 19:18

 

유지민 | 서울 문정고 3학년

 

 

우연히 배우 박신양의 오래전 인터뷰를 보았다.

그는 최근 몇년간 영화에서 왜 보기 힘들었나?”라는 질문에 몇년 동안 처절한 영화들이 너무 많았다. 시나리오들이 엄청나게 잔인하고 이상했다. 자기들도 보기 싫은 영화를 관객에게 보라고 한다.”(아레나 옴므 플러스, 20131월호)라고 답했다.

10여년도 더 전의 인터뷰이지만, 공감되지 않는 대목이 없었다.

또한, 인터뷰를 통해 여태 보아온 예술 작품의 폭력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연극, 뮤지컬, 드라마, 영화, 소설 등 다양한 작품 중 단연 교과서 문학의 폭력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중고등학교에서 문학 작품을 배우며 이야기의 폭력성과 선정성에 눈살을 찌푸린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현진건 작가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현실 고발적 사실주의소설이다.

인력거꾼 김첨지는 자신의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한달이 넘도록 기침하는 그를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 신조에 따라 병원에 보내지 않는다. 설렁탕이 먹고 싶다는 아내에게 돈이 없어 설렁탕을 사 주지 못해 이런 오라질 ×! 조밥도 못 먹는 ×이 설렁탕은같은 폭언을 일삼기도 한다. 아내가 그토록 바라던 설렁탕을 사 온 날, 방 안에 죽은 채로 누워 있는 아내를 보고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이라고 말하는 김첨지의 모습은 운수 좋은 날이라는 제목의 모순을 드러낸다.

 

김첨지가 아내에게 퍼붓는 폭력의 수위는 매우 높다.

줄거리를 알고 나서도 그의 행동을 쉬이 납득하기 어렵다.

김첨지는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했을까? 확실한 건 그가 아내를 사랑하는 방식은 올바르지 않다. 아내를 때리고, 욕하고, 밖에서까지 그를 험담했음에도 설렁탕을 사 주었으니폭력이 정당화되는 것일까.

작품 내내 아내는 이름 한번 언급되지 않는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여성이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폭행당하고 온갖 여성혐오적 수식어로 지칭된다. 까놓고 말해 이 작품에 배울 점이 어디 있어서 분석을 하고 문제를 풀어야 하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학생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 혐오가 담긴 소설을 반강제적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 불쾌하다.

 

운수 좋은 날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1924년 작이다.

이외에도 논란이 있는 작품 중 대부분이 짧게는 50, 길게는 100여년 전에 지어진 작품이기에 시대착오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는데, 논란이 있는 작품을 교과서에 계속 실어 학생들에게 가르쳐도 되는 것일까?

꼭 배워야만 하는 까닭이 있다면, 최소한 민감한 표현을 적정선에서 순화해야 한다.

구태여 노골적인 욕설과 폭력이 포함되지 않아도 얼마든지 줄거리와 인물의 심리, 작품이 시사하는 바를 알 수 있다.

만약 폭력성을 제거하고는 해석이 어려운 작품이라면 현시대에 걸맞은 문학적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가치관과 문학적 소양이 굳건해지기 이전에 만나는 예술 작품은 개인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교과서 문학 작품은 더욱 엄격한 기준 아래 선정되어야 한다.

설령 폭행, 욕설, 절도, 강간, 살인 등이 포함된 장면이 이런 현실을 비판하기 위함이라 하더라도, 작품의 전체 맥락과 무관하게 폭력성과 혐오 표현 자체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위험이 존재한다.

또한, 해가 지날수록 청소년의 인권 감수성이 높아지고 있다.

주변에도 문학 교과서 수록 작품의 문제점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친구들이 많다.

사회와 청소년의 발전 속도에 맞추어, 좀 더 신중한 교과서 문학 작품 선택이 필요한 때다.

작품의 시대착오성과 폭력성을 그저 감수하라고 할 게 아니라,

이러한 요소를 배제하면서도 높은 작품성을 지닌 이야기들을 발굴해야 한다.

'칼럼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이고 싶은 나  (0) 2026.04.15
생선구이는 멀리서 강하게  (1) 2026.04.14
언더 더 스킨  (0) 2026.04.13
내가 그와 살아가는 법  (1) 2026.04.12
아주 오래된 질문  (0) 2026.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