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에 갇히다
입력 : 2024.10.13 20:37 수정 : 2024.10.13. 20:42 복길 자유기고가
목요일 밤이 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본다. 방송은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뒤 퀭한 눈으로 주말만을 기다리는 밤에 더없이 어울린다. 눈으로 읽으면 1분도 걸리지 않을 이야기를 1시간이 넘도록 정성껏 구연하는 세 명의 진행자와 그런 노고에 보답하듯 자신의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해 대꾸해주는 연예인 게스트들. 그들의 대화는 다분히 연극적이고 그래서 조금 민망하다. 그러나 누군가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을 정도의 기운만 남은 목요일 밤엔 그 민망함도 잠시 스치는 기분일 뿐, 나는 기꺼이 그들의 말없는 관객이 되어 이야기를 귀로 삼킨다.
구연으로 진행되는 포맷의 특성상 <꼬꼬무>는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5막을 철저히 지킨다. 막이 전환될 때마다 목소리의 톤이 바뀌고 조명이나 음향 효과도 동원된다. 그러나 <꼬꼬무>의 구성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대목은 정작 아무 효과도 사용하지 않는 도입이다. ‘스토리 텔러’인 장성규, 장도연, 장현성 세 사람은 몇 가지 농담을 하다 이내 진지한 얼굴로 게스트를 바라보며 말한다.
‘이 이야기는 한 청년이 우연히 받은 전화에서 시작돼.’
클라이맥스와의 대비를 위해 고안되었을 이 평범한 첫 문장은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전래동화의 기법처럼 듣는 귀를 능숙하게 데우며 이어질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나는 가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그 첫 문장의 상태 그대로 이야기가 끝나길 바란다. 한 청년이 우연히 전화를 받았지만 그것은 그저 잘못 걸려온 전화였다는 허무한 결말을. 청년은 다시 밀린 잠을 자고, 느직하게 일어나 산책을 갈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지옥 고생담은 펼쳐지지 않는다. 주인공은 그저 매일 평온한 일상을 살게 될 것이다.
시작은 달콤하게 평범하게
처음부터 절박한 사람은 없다. 어떤 일에 휘말리게 된다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예측할 수 없기에 대비할 수도 없다.
나의 ‘꼬꼬무’는 스물다섯, 처음 만기 적금 통장을 받은 날 시작되었다.
취업 후 1년 동안 모은 돈은 천만원이었다.
금수저나 저축왕이라면 고개를 갸웃거릴 만큼 약소한 금액이지만 당시 나는 “자취하면서 천만원 모으는 게 얼마나 힘든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만큼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겼고, ‘돈은 마음의 근육’이라는 우스운 철학도 하나 가슴에 심었다.
학교 동기 하나가 ‘돈은 굴려야 그때부터 돈’이라며 투자자를 소개해준다고 했다.
이전 같았으면 결코 응하지 않았을 제안이지만 ‘천만원 모은 복길’은 감히 워런 버핏이 되고 싶었기에 만남을 흔쾌히 수락했다. 장소는 소공동의 5성급 호텔이었다. ‘만나는 것만으로 무슨 일이 생기겠어?’ 애써 초조함을 달랬지만 처음 느끼는 고급 호텔의 압력은 나를 한없이 위축시켰다.
유난히 이가 희고 반짝였던 투자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의 유년 시절과 학력, 현재 하고 있는 사업까지 단숨에 소개했다. 투자회사와 마케팅 회사를 운영하면서 동시에 모교 교수님과 새로운 사업도 진행 중이라는 뭐 하나 당장 확인할 수 없는 소개를 들으면서도 나는 큰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의 능숙한 언변이나 화려한 스펙 때문이 아니라, 고작 내가 가진 돈 천만원을 사기치기 위해 이런 큰 연극을 할 리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절정에서 되돌아가는 방법은 없다
투자자를 두 번째로 만난 곳은 수서역 근처의 고층 건물이었다. 사업설명회는 거창했다.
그는 회사의 고문이라며 전직 변호사, 의사, 교수, 대기업 임원들을 소개하고는 쫓기듯 스피치를 시작했다.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사실 건지 이 자리에서 결정을 하셔야 합니다.”
‘S급’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뇌’를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소유하고 있는 페라리 차량과 가평의 별장 사진, 판교에 준공 중인 본사 건물의 조감도도 보여주었다.
이 사업의 아이템이 ‘다이어트 약과 건강보조제’라는 것은 끄트머리에 짧게 언급될 뿐이었다.
분명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모두가 헛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저런 뻔한 기획사기에 속을 수가 있냐고. 이해한다.
회상을 하고 있는 지금 나조차도 믿을 수가 없다.
그러나 당시엔 그곳에 있던, 대부분 나와 같은 사회 초년생, 학생, 노인이었던 그들은 모두 동요하고 있었다.
투자자는 믿음이 흔들리는 부분을 정확히 공략해 불신을 없앴다.
그의 말 한마디면 의심은 사라지고 ‘경제적 자유’를 얻은 나의 미래만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날 설명회가 끝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나와 사람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강남의 전경은 아름다웠고 우리는 그 풍경을 보며 계속해서 아래로 떨어질 뿐이었다.
그때 그 기분을 알아차려야 했다.
치밀하게 설계된 그 악의가 결국 내게 죄책감마저 전가하게 될 거라는 걸.
그 멀미가 아주 오랫동안 나를 괴롭힐 거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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