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대 잃은 문명은 사라진다
입력 : 2024.12.01 20:39 수정 : 2024.12.01. 20:42 박이은실 여성학자
11월의 난데없는 폭설로 아수라장을 겪은 곳이 많았다. 불안정해진 기후만큼이나 인간세계도 불안정해지고 있다. 그나마 든든하게 기댈 토대가 있다면 이 불안을 안고도 삶을 지속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불안은 바로 그 토대가 부지불식간에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온다.
토대(土臺)라는 한자어가 가리키듯 토대의 기본은 ‘토’, 바로 흙이다.
전 세계에서 해마다 흙이 240억여t씩 흩어져 사라지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각자 해마다 몇t씩이나 되는 흙을 없애고 있는 셈이다.
개발과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한 과도한 농업과 같이 흙을 돌보지 않고 침식되게 방치하다
결국 토대를 잃은 문명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 갔다.
흙 침식의 문제를 면밀히 들여다본 학자들에 따르면 메소포타미아,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등의 유구했던 문명이 하나같이 침식과 토질 고갈로 결국 붕괴되었다.
흙 문제를 알게 된 후에도 당장의 개발과 소비를 위해 흙 돌보기를 외면했던 까닭이다.
지구 표면을 두께 30~90㎝ 정도로 덮고 있는 흙은 새 암석에서 새 흙이 만들어지는 속도와 침식 속도가 균형을 이루는 한 잘 보존되어왔다. 인간이 지구에 등장하기도 전에 여러 미생물들과 풍화작용 등이 손을 보태 그 균형을 이뤄온 것이다. 지렁이는 부엽토 등의 유기물을 흙과 섞은 똥을 만들어 내보내며 유구한 시간 동안 흙이 기름지게 돌봐왔다. 덕분에 비옥해진 땅에서 인간은 농사를 짓고 각자의 문명을 일궈올 수 있었다.
우리는 뉴스 등을 통해 한때 비옥했던 땅이 침식으로 인한 토질 고갈로 황폐해져서 해결할 길 막막해 보이는 빈곤과 분쟁에 시달리며 처참한 삶을 이어가는 얼굴들을 이미 수십년째 보고 있다. 모두 결과적으로 삶의 토대인 흙을 지키지 못해 일어난 일이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과학기술이 마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양 믿고 싶더라도 현실은 인간이 흙을 없애는 문제를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흙, 땅, 식물군 전체는 함께 진화해왔고 이들 사이의 상호 의존성은 흙의 침식과 생성 사이에 이루어지는 균형에 기대 있다. 인류의 생존은 과학기술이 아니라 이 균형에 기대 있는 것이다.
역사가 증명하듯 그 어떤 인간문명도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에 충분한 기름진 땅을 유지하는 만큼만 지속될 수 있다.
인간이 흙을 보호해야 흙이 인간을 지켜줄 수 있다는 뜻이다.
찰스 다윈이 생애 끝에서 낸 책은 어떻게 지렁이가 흙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죽기 직전 해에 이 책을 출간했다.
죽음을 앞둔 이가 남아 있는 생의 에너지를 모두 모아 다급하게 써냈을 만큼 그도 어느새 흙의 중요성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흙 침식을 흙 생성 속도에 맞추려면 흙을 기계가 아니라 손이 조심스럽게 만져야 한다.
호미를 든 소농들이야말로 흙을 돌보며 농사를 짓는 이들인 셈이다.
여성농부 대다수가 소농이다.
시골의 텃밭을 생각하면 당장 할머니들이 떠오르는 것도 이런 까닭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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