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지방대의 가치는 선택한 학생들이 안다 [왜냐면]
수정 2024-12-23 18:49 등록 2024-12-23 15:47
최윤희 |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2학년
대학가에서는 앞으로 15년을 한국 대학의 골든타임이라 부른다.
당장 학교에 학생이 없어서 대학의 존폐를 논하는 건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줄어드는 학령인구에 2040년에는 신입생이 절반 가까이 감소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교육부는 대학이 마주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글로컬 대학 30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상황이 특히 심각한 지방대학을 중심으로 지역 균형발전과 연계한 대학 모델을 제시한 대학 1곳당 5년에 걸쳐 1000억원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지난 4월23일 필자가 재학 중인 부산대가 부산교대와의 통합안에 최종 합의했다.
‘두 대학의 교육 기능을 일원화해 새로운 종합교원양성대학을 만들겠다’는 계획으로
글로컬대학 사업에 선정된 지 반년 만이었다. 함께 선정된 대학들 가운데 가장 빠른 통합이었다.
그러나 부산대와 부산교대의 통합 소식을 들은 학내 구성원들은 반발하기 시작했다.
사전 설명이 부족했고 학생 의견을 듣지 않은 졸속 통합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지난해 5월 통합 추진 소식이 처음 알려진 직후, 부산교대 학생들은 “교대 특성을 무시한 통합”이라며
글로컬 사업 공동 응모와 양 대학의 통합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대학 본부를 규탄하는 서명운동과 릴레이 피케팅도 이어졌다. 부산대에서도 반발 여론은 마찬가지였다.
부산대는 이미 장전, 양산, 밀양 등 3개의 캠퍼스를 두고 있으나 캠퍼스 간 연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었다.
이에 학생들은 오로지 글로컬대학 선정을 위한 통합일 뿐, 저물어가는 지방대학을 지탱할 ‘혁신을 위한 통합’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9월 부산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참여한 학부생 2360명 가운데 63.5%인 1500명이 통합 결정에 반대했다.
최근 비슷한 상황이 동덕여대에서도 일어났다.
동덕여대가 신입생 유치에 불리한 현 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 공학으로의 전환을 검토했기 때문이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들고, 대학 본관 앞에 학과 점퍼를 반납하고, 교정 곳곳에 붉은 래커로 ‘공학 전환을 반대한다’고 적었다. 수업을 거부하는 재학생들에 이어 졸업생들도 졸업장을 반납하고 연대의 힘을 보냈다.
요즘에는 보기 힘든 직접적인 학내 시위에 일부 사람들은 ‘폭력적’이라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이토록 투쟁했던 이유는 공학 전환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하는 지점에 들어서면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논의가 진전될수록, 더 많은 이해관계자의 반응을 살펴볼수록 암묵적인 합의는 점점 더 공고해진다. 거의 확정된 사안에 대해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반대 의견은 교묘히 배제된다.
동덕여대는 신입생이 없어 대책을 구하는 마당에 먼저 학교를 선택한 재학생들의 목소리는 묵살했다.
학교를 선택한 이들이 내놓을 수 있는 다양한 해법을 듣는 것이 아니라
가장 빠르고 편한 방법을 선택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다른 대학과 통합하거나 여자대학을 공학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 대학’만이 가지는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대학의 형태를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우리 대학’에 오고 싶어 하는 학생이 줄어든다는 문제는 여전할 것이다.
결국 언젠가 다가올 소멸을 좀 더 나중으로 미루는 것에 불과한 미봉책이다.
지방대학만이, 여자대학만이 가질 수 있는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학교를 선택한 학생들이다.
소멸을 피하는 해법도 그 학생들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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