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예측할 수 없는 하루

닭털주 2025. 1. 17. 18:58

예측할 수 없는 하루

입력 : 2025.01.16 21:00 수정 : 2025.01.16. 21:05 박준우 셰프

 

 

13년째 쭉 쓰고 있는 상표의 다이어리 한 권에 적을 수 있는 일정은 다음 해의 14일까지라 늦어도 12월 마지막 주에는 문고로 가 내년도 다이어리를 장만하고 가는 해의 마지막 일정과 오는 해의 첫 일정을 옮겨 적는다. 그렇게 두 해의 가운데에서 끝과 시작을 보내다 보면 연하장이 들어있는 몇 개의 소포가 집과 가게로 날아든다. 뜯어보면 대개 달력이나 열쇠고리 같은 것들이다. 열쇠고리는 쓸모를 찾을 때까지 서랍에 넣어두면 되고, 달력은 부모님 댁으로 보내거나 서재에 걸어두면 되는데, 1월이 되어서야 도착한 다이어리들을 보면 조금 난감해진다.

 

하루에 쳐내야 하는 일이 열두 개라도 한 칸에 빼곡하게 적으면 되지, 다이어리 여러 개가 필요할 일은 아니다. 받은 것이 아까워서 굳이 개인 일정과 가게 일정을 적는 수첩으로 나누어 한 권에 억지로 쓰임을 주었는데, 그럼에도 올해는 2권이나 남았다. 수첩을 좀 천천히 살걸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연말마다 남들이 보내줄지 알 수 없는 선물을 기다리며 찢은 신문 귀퉁이에 일정을 적어 지갑에 넣고 다니는 것도 보통 모양 빠지는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거래처나 관련 업계 담당자의 연하장 리스트에 내 이름이 언제 오르고 내려갈지 알 길이 없다. 연말연시 불러주는 술자리와, 연하장과 함께 보내줄 다이어리의 수를 미리 알고 있으려면 경기도 읽어야 하고 남의 마음도 읽을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이었던 적이 없다.

 

다시 장사를 시작하고 세 번째 새해를 맞았다.

매일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디저트를 진열대에 채워 넣고는 있지만

사실 어떤 준비를 해야 하루의 장사를 제대로 해낼지 예측할 수가 없다.

그저 손님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할 뿐이다.

 

사실 준비를 어떻게 하든 간에 그날의 장사가 마음에 드는 날은 드물다.

끼니를 위한 국밥이나 김밥을 파는 일도 아니고

설탕과 밀가루와 과일, 초콜릿 따위로 만드는 간식거리의 장사가 꾸준하기란 힘들다.

손님이 기대만큼 들지 않아 디저트가 남는 날에는

차라리 덜 만들어 재료비나 아낄걸싶은 마음이 들어 퇴근길이 영 편치 못하다.

퇴근하는 직원에게 남은 디저트를 한두 개 떠안기듯 주거나,

근처 지인에게 무슨 선물인 양 가져다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런 날이 사나흘씩 반복되면 참으로 민망하기가 그지없다.

그렇다고 손님이 몰려들어 디저트가 금방 동이 난 날의 마음이라고 편한 것은 아니다.

그런 날은 조금 무리해서 좀 더 많이 만들어 두었더라면하는 마음이 들어 아쉬움만 남는다.

준비한 타르트가 먼저 팔리면 다른 디저트는 접어두고 타르트나 더 많이 만들걸하는 마음이 들고,

피낭시에가 먼저 동이 난 날에는 다른 것 접어두고 피낭시에나 더 만들어 둘걸싶은 마음이 든다.

 

해가 바뀔 즈음이면 얼른 새 다이어리를 장만해 일정을 정리해 둬야 한다.

공짜 수첩이 들어오길 기다리며 정초부터 게으름의 핑계로 써먹느니 미리 사두는 것이 속이 편하고,

하루의 장사 역시 손님의 발길이 어찌 되든 그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하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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