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도 안다
입력 : 2025.01.22 21:05 수정 : 2025.01.22. 21:12 이은희 과학저술가
‘머리가 나쁘다’라고 누군가를 낮잡아 볼 때, 흔히 소환되는 동물 중 하나가 금붕어다.
금붕어의 기억력이 겨우 3초에 불과하다는 낭설은 너무나도 널리 퍼져 있다.
과학적인 시각으로 봐도 물고기의 지능은 물리적으로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대개의 물고기들은 뇌가 아주 작고 신경세포의 숫자도 1000만 남짓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적다.
이는 어림잡아도 인간 뇌의 1000분의 1에 불과하며,
이렇게 작은 뇌는 신체활동을 유지하고 움직임을 제어하며 본능적 반응을 담당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찰 정도다.
하지만 과연 정말 물고기는 속설대로 멍청한 걸까.
이에 반하는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바로 영국 UCL 신경과학연구소의 연구진이 실시한 ‘물고기의 수학적 능력’에 대한 연구다. 이들의 실험 대상은 관상어로 인기 있는 작고 흔한 물고기인 거피였다. 거피를 비롯한 작은 물고기들은 본능적으로 무리를 이루려는 습성이 있다.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최하단에 위치한 이들일수록 무리를 이루려는 본능이 강하다. 피식자가 혼자 다니다 천적을 만나면 잡아먹힐 확률은 1에 수렴하지만, 여럿이 함께 뭉쳐 다니면 그 확률이 1/N로 확실히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때 집단의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생존 확률도 착실히 올라간다. 집단이 클수록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면, 이들에게 더 큰 수를 인지하는 능력이 있는 건 아닐까.
이에 연구진은 3칸으로 나뉜 어항을 준비하고 왼쪽 칸과 오른쪽 칸에 거피를 일정 비율(1 대 3, 1 대 2, 2 대 3, 3 대 4 등등)로 넣은 뒤, 가운데 칸에는 부화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갓난 거피를 넣어 이들이 어느 쪽 집단으로 이동하는지를 관찰했다.
집단의 크기가 현격히 다른 경우, 그러니까 양쪽 거피 수의 비율이 1 대 3이나 1 대 2인 경우, 어린 거피들은 확실하게 더 많은 수의 거피들이 있는 칸으로 이동했다.
더 큰 무리가 더 안전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듯 말이다.
그러나 집단의 크기가 비슷한 경우(2 대 3 혹은 3 대 4), 이들은 갈팡질팡했다.
비율이 비슷하면 구분하기 어려운 듯했다. 거피가 집단의 크기를 확실히 구분하는 평균 한계선은 0.67로, 약 2 대 3의 비율보다는 그 차이가 커야 했다. 이를 관찰한 연구진은 또 하나의 실험을 기획했다. 과연 좁쌀보다 작은 뇌를 가진 어린 거피들도 보상학습이 가능한지의 여부였다. 방법은 크기가 비슷한 두 개의 집단을 선택하는 실험에서 더 큰 쪽을 선택한 경우에만 먹이를 주어 보상하는 방식으로 학습시킨 것이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학습이 거듭되는 만큼 거피들의 정답률도 높아졌다.
그런데 거피의 수를 늘려 여러번 실험을 거듭하자 또 다른 패턴이 드러났다.
바로 모든 거피들이 다 보상학습에서 진전을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배운 대로 행할 줄 아는 ‘똑똑한’ 거피가 있는 반면,
학습효과가 별로 없는 ‘아둔한’ 거피도 있었다.
여기서 연구진은 하나의 실험을 더 구상한다.
똑똑한 거피와 그렇지 못한 거피를 한 팀으로 묶어 실험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결과는 역시나 흥미로웠다.
팀을 이루었을 때, 이들의 정답률은 똑똑한 거피의 그것에 근접했다.
단독으로 존재할 때의 거피는 각각의 능력치에 의존하지만, 팀을 이루는 경우에는 가장 우수한 거피의 능력치로 집단의 평균 성공률이 상승하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거피 집단에서 똑똑한 리더의 존재는 집단 평균의 생존율과 보상 획득에 분명하게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리더 거피를 따라하는 다른 거피들의 행동이다.
만약 이들이 그저 본능에 따라서만 행동한다면,
다른 거피가 어떻게 행동하든 말든 원래의 패턴을 고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동료가 생기자 주변을 인식하고, 리더를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보통 학습된 ‘똑똑한’ 거피는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다른 거피들에 비해 먼저 행동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것이 트리거처럼 작용해서 다른 거피들의 행동 양식에 영향을 미치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신과 집단 전체의 생존율을 높이는 긍정적인 쪽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집단생활을 하는 생명체들에게 경험 많고 똑똑하고 유능하며 실행력 있는 리더의 존재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법칙이 적용되는 집단이 거피만이 아니라는 걸, 그보다 1000배는 큰 뇌를 가진 인류가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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