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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판 전세사기’ 뒤통수 맞은 청년농민

닭털주 2025. 1. 24. 19:51

농업판 전세사기뒤통수 맞은 청년농민

입력 : 2025.01.23 21:25 수정 : 2025.01.23. 21:27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요 몇년 자녀들이 전세사기를 당했다는 농민들의 소식을 듣곤 했다.

수도권으로 어렵게 올려보낸 자녀들이 월세를 절약해 미래를 준비하도록 쌀 팔고 깨 팔아 돈을 보탰건만 졸지에 사기를 당하고 말았으니 이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에까지 피해를 주는 악질범죄다.

그런데 요즘 청년농민들이 농업판 전세사기를 당했다며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20대 대선에서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농업농촌 공약으로 내세운 것은 청년농업인 육성 정책이다. 이제 표심에 큰 영향도 없고 한 줌도 안 되는 농업이 거추장스러워도 먹고살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

식량안보 차원에서라도 모든 대선후보는 농업농촌 공약을 내놓는다. 윤석열의 공약은 청년농업인 3만명 육성이었다. 현재 주요 생계수단이 농업이라는 증명서인 농가경영등록체기준으로 보자면 2020년 기준 농민가구는 약 1035000호다. 그중 40세 미만 청년 농가는 약 12000호로 1.2% 수준이다. 부부가 공동경영한다고 전제하더라도 청년농민 2만명이 채 되지 않을 텐데 그 이상인 3만명을 육성한다는 목표가 모두 잘사는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구호처럼 허황스러웠다. 그래도 선언했으니 실적은 채워야 하고 말단의 행정까지 굼뜨게 움직였다.

2023년에는 청년농업인 2000명을 육성하고, 2024년에는 4000, 그러다 임기까지 3만명을 채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던지 2024년 이후는 매년 5000명씩 선발해 지원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질보다는 양으로라도 채울 심산이었다.

 

농사를 지으려면 농지가 있어야 하고 청년농민들이 관심 갖는 스마트팜이나 재배시설은 시설비에 큰돈이 들어간다.

이 돈을 정부가 무상 지원하는 건 결코 아니다. 농협을 플랫폼으로 삼는 대출프로그램을 운용하는 것이다.

처음엔 1인당 최대 3억원에 2% 이자와 10년 상환 조건이었으나 더 많은 지원자를 끌어내기 위해 1인당 최대 5억원까지 1.5%의 이자로 20년 원금 균등분할 상환 조건을 걸었다.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농신보)의 수수료까지 치면 기실 2% 이자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는가. 당연히 까다로운 서류를 요구한다.

영농계획은 물론 그간 어떤 농업교육을 받았는지,

농지, 축사, 시설 공사 계약서류가 있는지,

돈만 받고 농사에 소홀할까 싶어 직장은 그만뒀는지 퇴사증명서도 요구한다.

취조 수준의 계획서가 통과돼 농협에서 대출 승인을 받은 뒤,

공신력 있는 농신보의 오케이 사인까지 받았으니 착실하게 창업농 준비를 시작한다.

 

쉬이 나오지 않는 농지를 겨우 찾아 땅값 10%를 계약금으로 모은 돈으로 치른다.

마을 주민들이나 먼저 농사를 짓고 있는 부모의 얼굴을 봐서

또 정부가 대출도 나온다 하였으니 계약금을 적게 받거나 계약서만 쓰고

양해를 구해 시설 공사에 돌입하고 묘목을 들였다.

농사 적기는 매번 오지 않으므로 대출금이 들어오면 잔금 치르고 딱 맞춰 농사를 시작하려던 것이다.

전세대출이 확정되면 우선 전세 계약금도 걸고 이삿짐센터와 계약을 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2024년 들어 예년보다 청년농업인 지원자는 더 뽑고 예산은 외려 줄여

여기저기 불안하다는 말이 나왔다.

결국 지난해 11월 농식품부는 전체 지원자 중 25%만 선발하고 나머지는 나 몰라라다.

고작 내세운 명분은 부실한 청년농업인을 걸러낸다는 것이다.

 

정부대출 확약을 받았던 이들이 계약금은 고사하고 위약금에다 공사 잔금을 치르지 못해 소송까지 몰리며

부모형제의 신용대출까지 끌어들이는 피해가 속출했다.

청년농업인 자격을 얻으려면 농업 외의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 제약으로

일용직을 전전하며 버티고 있다.

그간 기획재정부의 부속품처럼 굴던 농식품부가 뒤늦게 대책을 세운다지만 영농철이 코앞이다.

새파란 젊음을 밑천 삼아 농촌에서 농업으로 먹고살아보려던 청년농민들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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