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풍요로운 미술과 메마른 작업

닭털주 2025. 1. 24. 19:59

풍요로운 미술과 메마른 작업

입력 : 2025.01.22 21:08 수정 : 2025.01.22. 21:12 박영택 미술평론가

 

 

매년 1월은 다양한 작가 지원금 심사가 있는 달이다.

각 지자체의 문화재단을 비롯한 여러 작가 지원사업의 심의에 간혹 참여하면서 드는 우선적인 생각은

대한민국에 미술인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이다.

곧바로 이들은 과연 어떻게 먹고사는지에 대한 의문과 걱정,

동시에 대다수 작업들이 어째서 이토록 진부하고 변변치 못한 것인지에 대한 안타까움,

이런 작업으로는 도저히 먹고살기 어려울뿐더러

미술계에서 인정받거나 선택받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해서 많은 작가들이 과연 자기 작업으로 먹고살려는 이들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도

밀려든다.

 

사실 그런 것까지 고민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자연스레 도태되고 걸러지겠지만 그럼에도 이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미술이 과잉되고 있으며

그 내실은 누추하고 빈약하다는 점을 거울처럼 비춰준다.

작가 수가 많다고,

전시가 늘어나고 온갖 아트페어가 줄지어 이어지고 미술시장이 커진다고 해서

미술이 질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시대에도 우리는 가장 빈약하고 형편없었던 지난 1960년대, 1970년대의 대표작가들을 넘어서는 것을 보기 어렵다.

여전히 변관식과 김환기, 유영국과 박고석, 박수근, 천경자, 권진규만 한 성과를

쉽게 넘지 못한다.

단순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그 불우한 시기를 관통한 자들의 가난과 피폐, 열악함이

역설적으로 그 환한 개인성으로 가득한 걸작들을

격렬한 산통으로 출산해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식민지와 한국전쟁의 환난과 무관한, 그것을 풍문으로 들은 지금의 작가들은 비교할 수 없는 환경에서

미술을 하는 편이고 상대적으로 많은 혜택을 받는 편이다.

그러나 오늘날 작가에 대한 지원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역할과 성과를 내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심사를 하며 읽은 작가들의 포트폴리오에 적힌 작업에 대한 글들은 대부분 거창하거나 난해한 현학취로 가득하다.

미술을 전공한 이나 아마추어 화가들이나 거의 동일한 편이다.

무거운 주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품 자체가 빈약하고 메마르다는 인상이다.

과포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원제도의 항목에 맞추기 위한 억지 글이고 가짜 글들이다.

작업과 유리된 채 겉도는 레토릭들이다.

내세우는 작업의 의도나 주제 역시 엇비슷하다.

다들 유사한 생각과 상식적인 기준에 입각해 미술을 이해하고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나는 이러한 복제 현상이랄까, 획일화가 다소 두렵고 의아하다.

작가들의 생각이 이렇다면 그들의 작업 역시 그 틀 안에서 자유롭긴 어려울 것이다.

당연히 미술 작품에 기대하는 상상력과 창의성 등을 이들의 작업에서 찾기는 난감하다.

세계는 상대적인 것이라 개인에 따라 무수한 해석들이 존재한다.

단 하나의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다양한 입장만이 있다.

세계를 보는 무수한 관점이 있으므로 미술에도 무수한 관점이 존재한다.

그러니 좋은 작가들은 자신의 미술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자기 삶으로부터 연유하는 미술에 대해 독자적인 발언을 하는 이들이다.

 

좋은 작업은 거창하고 그럴듯한 주제로 포장하거나 현학적 수사로 감싸기보다는

그것들을 밀어낸 자리에 솔직, 담담하게 미술에 대한 자기 생각을 기술하거나

작업 자체에 대한 근원적 회의를 끌어안는 것이다.

원하는 대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꿈을 꾼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맴도는 것,

의도와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의 간극 사이에서 지속해서 움직이는 게 작업이고,

그게 삶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