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쁜 세상, 심호흡을 권한다 [노정혜 칼럼]
수정 2025-01-23 18:52 등록 2025-01-23 18:41
노정혜 | 서울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
계엄과 탄핵소추가 몰고 온 소용돌이 속에서 일그러진 국격과 사회갈등의 민낯들을 매일 접하다 보면, 울컥 화가 나고 욕설이 나온다. 타협과 양보의 정치력이라곤 전혀 없는 정치권의 한심스러운 양태가 숨막힐 정도로 답답하다. 숨구멍을 트이게 할 시원한 바람은 과연 불어올 수 있을까. 숨을 크게 쉬고 화를 가라앉힌다. 시원한 바람을 기대해 보는 소망까지 질식되면 큰일이다. 평정심을 찾으려 심호흡을 하며 숨쉬기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인간의 호흡은 들숨(흡)을 통해 몸에 산소를 공급하고 날숨(호)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내뱉으며 기체를 교환하는 행위이다. 허파를 통해 들이마신 공기 중의 산소는 허파꽈리를 둘러싼 모세혈관으로 스며들어간 뒤 심장과 혈류를 통해 몸의 구석구석 모든 세포들로 전달된다. 우리에게 산소가 필요한 이유는 섭취한 음식물로부터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이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인 에너지가 있어야 움직이고 먹고 생각하며 살 수가 있다.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기기의 대부분은 전기에너지로 작동하지만
생물체들은 생체에너지라고 불리는 화학에너지를 써서 살아간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산소를 활용하여 생체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생산된 에너지는 즉각적으로 세포의 모든 생명 현상을 수행하는 데 사용된다. 생명체에서는 에너지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같은 세포이다. 근육세포든 신경세포든 자신이 생산한 에너지를 스스로 소비한다. 세포 안에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장소는 미토콘드리아라고 불리는 소기관이다. 마치 발전소에서 전기에너지를 만들어내듯, 미토콘드리아는 에이티피(ATP)라 불리는 생체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발전소의 역할을 한다. 세상의 발전소는 생산된 전기를 먼 거리로 이동시켜야 하지만 우리 몸에서는 모든 세포가 각각 다 발전소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에서 탄수화물과 지질 같은 영양분이 소화되고 분해되면 세포 안에서 탄소 세개로만 연결된 저분자량의 유기산으로 바뀐다. 미토콘드리아는 이 삼탄 유기산에서 뽑아낸 전자를 산소로 전달하며 그 과정 중에 에이티피라는 에너지 분자를 만들고, 물과 이산화탄소를 만들어 낸다. 허파를 통한 호흡과 구분하여 세포에서 산소를 사용하는 과정을 세포호흡이라 한다. 세포호흡을 수행하는 미토콘드리아는 생체에너지 분자를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단백질 복합체를 자기 자신의 유전정보로부터 발현해 낸다.
먼 옛날, 약 20억년 전 자유로이 산소호흡을 하던 박테리아가 고균의 몸 안에 들어와 함께 지내다가 진핵세포의 일부분이 된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내 소기관으로 변신한 후에도 자신의 유전자를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유전정보는 소실되었지만, 산소호흡과 에너지 생산에 필요한 단백질들 그리고 그 단백질들을 유전정보로부터 번역하여 합성해 내는 기능에 대한 유전자는 여전히 미토콘드리아가 간직하고 있다.
박테리아의 후손답게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안에서 스스로 분열하여 숫자를 늘릴 수 있다.
그리고 엄마의 난자를 통해 자식에게로 전달되는 모계유전의 방식을 통해 세대를 이어가며 존속한다.
산소에 전자와 수소를 전달하며 생체에너지를 만들고
최종 산물인 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활성산소가 생긴다.
반응성이 강한 활성산소는 미토콘드리아의 구성 물질과 유전자에 손상을 주게 된다.
활성산소의 축적을 막지 못하고 손상을 복구하지 못하면,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장애가 오고 급기야는 그 미토콘드리아를 품고 있는 세포 전체가 손상되고 사멸된다. 이것이 노화와 암, 파킨슨병이나 치매와 같은 퇴행성 질환을 유발하는 하나의 경로가 된다.
에너지를 만드는 생산적인 과정과 손상을 일으키는 부산물의 병존은 피할 수 없는 자연의 과정이나, 건강한 세포들은 피해를 줄이기 위한 항산화적 방어기제들을 다 지니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앞으로 25년간 세계의 에너지 수요가 현재의 두배 규모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데이터센터의 급증, 폭염 빈발에 따른 에어컨 사용의 증가, 청정에너지 생산을 위한 전력 사용의 증가가 주요인으로 지목된다. 온실가스를 줄이며 증가하는 전력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더 많은 청정에너지를 생산해야겠지만, 전기에너지의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치열하게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한의 일을 하는 생명체를 모방하는 과학기술이 더 많이 발전해야 한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는 데 2500킬로칼로리(k㎈) 정도의 열량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를 시간당 사용하는 에너지로 환산하면 약 100와트 정도이다.
음식물을 섭취하여 몸속 세포 곳곳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시간당 100와트 정도를 소비하며 숨 쉬고, 움직이고, 생각한다. 현재 가장 앞서가는 인공지능 슈퍼컴퓨터는 약 1천조개 수준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한 중앙처리장치와 그래픽처리장치를 써서, 인간의 뇌에 비견할 수 있는 정보처리를 하는 데 약 20메가와트의 전력을 쓴다고 한다.
그에 비해 인간의 뇌는 약 800억개의 신경세포들이 대략 1천조개 수준의 시냅스로 연결되어,
감지하고 판단하고 학습하고 기억하는 데 단 15와트만을 소모한다.
인공지능 슈퍼컴퓨터에 비해 100만분의 1도 안 되는 파워를 쓴다.
인간 뇌의 구조와 작동방식을 모방한 뇌 모사형(neuromorphic) 컴퓨터가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가까운 미래에 인간 뇌처럼 저전력을 쓰면서 고효율의 정보처리를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렇듯 우리 몸은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한의 일을 하는 경이로운 존재이다.
우리 몸을 존중하고 아끼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심호흡을 해야 한다.
큰 숨을 들이마시고, 길고 깊게 숨을 내뿜으며 몸속에 쌓인 이산화탄소를 최대한 내뱉어야 한다.
이러한 동작은 명상의 기본이기도 하고 운동의 기본이 되기도 한다.
깊은 호흡은 긴 호흡이다.
세상이 아무리 숨가쁘게 돌아가도,
아무리 숨막히는 상황이 이어지더라도,
내가 살고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길고 깊은 호흡을 하며 조급함을 달래고 에너지를 축적해야 한다.
그래야 코앞의 이해득실로 분노하고 이리저리 쏠리는 찰나의 현상을 넘어
역사의 큰 파도에 대처할 안목과 힘이 생길 것이다.
국가에 대한 걱정으로 불면과 우울을 앓고 있는 국민들을 위한다면 정부와 국회도 숨을 고르고
길고 깊은 호흡의 정책과 입법을 추구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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