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영물’과 ‘요물’, 뱀의 두 얼굴

닭털주 2025. 1. 27. 10:34

영물요물’, 뱀의 두 얼굴

입력 : 2025.01.26 20:30 수정 : 2025.01.26. 20:36 엄민용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 저자

 

 

오는 29일 설날이면 육십갑자 중 마흔두 번째 해인 뱀의 해 을사년(乙巳年)이 시작된다.

우리 민속에서 뱀이 지닌 상징성은 둘로 엇갈린다.

하나는 복을 가져다주는 영물이다.

뱀은 성장할 때 허물을 벗고, 죽은 듯이 겨울잠에 들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이는 죽음으로부터 재생하는 영원한 생명의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또 뱀은 많은 알을 낳아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특히 뱀 중에서 구렁이는 집안을 부유하게 하는 업신(業神)으로 모셔진다.

<표준국어대사전>집안의 재산을 늘려준다는 구렁이를 뜻하는 말로 업구렁이가 올라 있을 정도다.

 

이와 달리 뱀은 혀를 날름거리며 기어다니는 데다

독을 품고 있는 것들이 많아 혐오와 공포 대상인 요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아무 말이나 가리지 않고 함부로 떠드는 사람을 비꼬는 입에서 구렁이가 나가는지 뱀이 나가는지 모른다는 속담에도 뱀의 부정적 느낌이 담겼다.

거짓을 퍼뜨리고 중상모략을 하는 이를 뱀의 혀를 가진 사람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날씨나 분위기 따위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한 데가 있다를 뜻하는 말 을씨년스럽다에도 뱀의 나쁜 상징성이 배어 있다.

이 말은 1905년에 일제가 이완용 등 친일 고관들을 앞세워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은 을사늑약에 뿌리를 두고 있다. 120년 전의 을사년은 우리나라 민중에게 치욕스러운 해였다.

여기에 뱀의 음흉한 인식이 결합하면서 을사년 을시년 을씨년으로 변한 말이 을씨년스럽다.

 

한편 우리 주변엔 뱀과 관련한 잘못된 상식이 많이 전해진다.

독사에게 물렸을 때는 빨리 물린 자리를 입으로 빨아 독을 제거하고 물린 곳 위쪽을 단단히 동여맨 후

병원에 가라는 얘기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입으로 빤다고 해서 주입된 독이 빠져나올 리 없고,

피가 안 통하게 동여매면 근육이 괴사할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독사에게 물리면 서둘러 해독 주사제가 있는 병원으로 가는 게 최선이다.

물린 뒤 일곱 발짝만 떼어도 죽는다는 칠점사칠보사역시 사람들이 지어낸 얘기다.

당연히 그런 말은 국어사전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