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탤지어, 고향과 추억이 주는 따뜻한 위로
입력 : 2025.01.21 21:10 수정 : 2025.01.21. 21:12 김기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설 명절이 다가오면 많은 이들이 고향을 찾고,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 한편에 고향을 떠올리곤 합니다. 고향이란 단어만으로도 우리의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향은 단순히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고향은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위로하며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감정적 자원으로 작용합니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 <나의 마지막 엄마>는 신용카드회사에서 극소수 VIP 고객들에게 특별히 제공하는 가상의 고향 방문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바쁜 삶 속에서 잠시나마 고향의 따스함에 안겨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고향이 가진 치유적 힘을 느끼고 가슴 찡한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실제로 전라남도는 ‘고향애(愛) 여행가자’란 프로그램을 통해 출향 도민과 재외동포들이 고향의 정취를 만끽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단순히 지역 경제 활성화를 넘어, 개인의 정체성 회복과 정신적 안정에 기여하는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향수’로 번역되는 노스탤지어(nostalgia)는 고향이나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말합니다. 이 용어는 1688년 스위스 의사 요하네스 호퍼가 전쟁 중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군인들의 상태를 설명하며 처음 사용했습니다. 호퍼는 노스탤지어의 대표적 증상으로 수면 장애, 갑작스러운 분노, 시력 및 청력 저하, 발열, 식욕 감퇴 등이 있고, 심하면 사망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고 부정적 감정으로 간주하였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학자들은 노스탤지어가 심리적으로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2006년 성격과 사회심리 저널(JPSP)에 발표된 연구는 노스탤지어 기억이 대부분 즐거운 내용으로 회상되며 본질적으로 긍정적인 감정임을 밝혔습니다. 논문의 공동저자인 영국의 사회심리학자 콘스탄틴 세디키드스 박사는 노스탤지어를 “마음을 어두운 생각으로부터 지켜주는 갑옷”에 비유하며, 노스탤지어가 개인의 심리적 건강, 삶의 의미 증진, 전반적인 안녕감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강조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지고, 고향에 얽힌 향수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어린 시절 추억, 가족과 함께한 시간,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했던 장소를 떠올리며 마음에 따뜻한 위로를 받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고향의 냄새, 어머니의 음식, 혹은 소소한 물건이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라 칼스튼슨 교수의 사회정서선택이론에 따르면,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삶의 유한함을 인식하며 미래 지향적 목표보다는 삶의 목적과 의미,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노스탤지어를 더 자주 느끼고, 가까운 사람들의 역할을 더 강조할 가능성이 커지게 됩니다. 또한, 사별로 인한 상실감과 건강 악화로 인한 사회적 고립 위험이 커질수록, 노스탤지어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연결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라는 정지용의 시 ‘향수’의 구절처럼, 이번 명절에는 자신만의 향수를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꼭 고향이 아니더라도 가족과 함께 겨울이면 즐겨 먹던 음식, 자주 맡던 풀향기, 어린 시절 뛰어놀던 학교 운동장 등 우리를 따뜻하게 만드는 기억을 소중히 꺼내어보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러한 기억은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삶의 의미를 재발견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가족과 함께 고향 음식을 만들어보거나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보며 추억을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번 설 명절은 고향과 추억이 가져다주는 치유의 선물을 통해 마음의 쉼표가 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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