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 27

네 죽음을 기억하라

네 죽음을 기억하라입력 : 2022.05.14 03:00 수정 : 2022.05.14. 03:02 김택근 시인·작가  평론가 이어령, 변호사 한승헌, 소설가 이외수. 그들을 향한 추도사가 아직도 허공을 맴도는데 강수연과 김지하의 부음이 들려왔다. 지난 11일 두 사람은 봄의 끝자락에 묻혔다. 그들이 떠났어도 이팝나무는 흰 웃음을 흩날리고 여기저기 꽃불이 옮겨 붙어 대지는 곱다. 저 봄빛은 투명해서 무덤 속까지 비출까. 북망산에도 소쩍새가 울고 있을까. 그들의 치열했던 삶은 죽음을 탄생시키고 그 소임을 마쳤다. 그들은 죽음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배우 강수연의 큰 눈에는 도도한 슬픔이 담겨있었다. 눈물이 가냘프지 않았고, 아름다움은 가볍지 않았다. '그래서 범접하기 어려웠다. 초봄의 ‘상큼한 도발’과 늦..

칼럼읽다 13:00:43

머무르거나 떠도는 것이 운명을 결정한다

머무르거나 떠도는 것이 운명을 결정한다입력 : 2024.11.13 20:00 수정 : 2024.11.13. 20:03 이은희 과학저술가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종류는 약 200종이나 되지만, 이들을 정착의 여부로만 보면 부착성 세포(adherent cell)와 부유성 세포(suspension cell), 단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부착성 세포는 말 그대로 특정 지역에 자리를 잡으면 서로 결합해 못 박힌 듯 자리를 고수하는 세포들이다. 사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 대부분은 부착성을 가진다. 그렇지 않으면 몸을 제대로 유지하거나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혈관을 구성하는 세포들이 단단히 결합하지 않으면 혈관에 구멍이 나기 십상일 테고, 복강 내 내장기관이나 근육층 내부에서 머리카락이나 치아가 ..

칼럼읽다 10:37:49

나무늘보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나무늘보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입력 : 2024.12.18 21:03 수정 : 2024.12.18. 21:07 이은희 과학저술가  세상에는 참 다양한 생물들이 많다지만, 그 ‘희한한 동물들’의 목록 상단에 위치할 만한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나무늘보다. 남아메리카의 울창한 정글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던 나무늘보를 처음 문명 세계에 알린 것은 16세기 스페인의 한 탐험가였다. 그는 나무늘보를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동물”이라고 혹평했고, 이 부정적인 첫인상은 이후 나무늘보의 이미지를 ‘너무나 게을러 형편없는 짐승’으로 고착시킨다. 나무늘보에 대한 경멸의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는 그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는데, 나무늘보의 영어 명칭인 ‘sloth’는 7대 죄악 중 하나인 ‘나태(sloth)’에서 그대로 붙..

칼럼읽다 2024.12.20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함부로 하지 못하게입력 : 2024.12.18 21:06 수정 : 2024.12.18. 21:09  현재는 필히 과거가 된다. 그리고 그 과거는 일부만이 역사로 기록되어 왔다. 지금껏 무엇이 어떻게 선별되어 역사로 기록되었는지, 왜 그것들이 역사적 기록으로 남게 되었는지 새삼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올해 국가유산청에서 발행하는 소식지 ‘국가유산사랑’에 ‘근대와의 조우’라는 글을 매달 연재했다. 광주 양림동, 나주 영산포, 진주 에나길, 경주 읍성 둘레, 원주 대성로, 제주 모슬포 등 각 지역에서 반나절 찬찬히 걸어 둘러볼 수 있는 국가등록문화유산을 중심으로 동선을 짜 이야기를 엮었다. 우리가 흔히 국가유산이라고 할 때 떠올리는 국보·보물·사적·명승·천연기념물·국가무형유산·국가민속문화유산은 모두 지정문화..

칼럼읽다 2024.12.19

중고령 세대의 정치문해력

중고령 세대의 정치문해력입력 : 2024.12.18 21:10 수정 : 2024.12.18. 21:12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지난주 영국의 BBC는 국회의 탄핵소추 장면을 보도하면서, 화면을 양분해 여의도와 광화문을 동시에 비추었다. 왼쪽에는 춤추며 기뻐하는 여의도의 젊은이들을 잡았고, 오른쪽에는 침묵하며 주저앉은 광화문의 중고령자들을 비추었다. 한국의 정치지형을 가르고 있는 세대 간 대치국면을 극명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한 조사에 따르면 50대 이하 전 연령에서 80%가 탄핵에 찬성한 반면, 60대 이상은 60%, 70대 이상은 49%만이 찬성했다. 과연 60~70대의 생각은 왜 이토록 다른 것일까? 한 가지 힌트를 지난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2주..

칼럼읽다 2024.12.19

이상한 나라의 AI교과서 [똑똑! 한국사회]

이상한 나라의 AI교과서 [똑똑! 한국사회]수정 2024-12-16 18:52 등록 2024-12-16 16:59 송아름 | 초등교사·동화작가  지난 11월28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용 도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모든 교실에서 인공지능 교과서를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학교장의 재량으로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도입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인공지능 교과서가 언젠가는 오게 될 학교의 미래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 미래가 이렇게 빨리, 교사와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사기업 이름을 단 기차를 타고 온 것은 달갑지 않았다. 코로나 시기에 처음 화상수업에 사용한 줌을 ..

칼럼읽다 2024.12.18

나는 효율에 반대합니다

나는 효율에 반대합니다입력 : 2024.12.17 20:58 수정 : 2024.12.17. 21:01 안주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은 기질적인 것부터 사회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살아가면서 느끼는 다양한 불일치와 피로와 고통을 바라보는 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많은 이들을 만나며 인간에 대해, 마음에 대해, 사회에 대해 생각했다. 많은 일이 일어났던 지난 2주간, 더 많이 생각했다. 우리는 어떻게 하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어릴 때부터 살아온 이야기를 차근차근 듣고 공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같은 기전으로 근대사를 돌이켜보면, 한국은 식민지배와 전쟁 이후 효율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아 지금까지 달려왔다. 가난과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속도와 생산성, 효율..

칼럼읽다 2024.12.18

노벨상, 노자, 비상계엄 그리고 한강

노벨상, 노자, 비상계엄 그리고 한강입력 : 2024.12.12. 20:35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마지막이다. 달력도 한 장 남았다. 세상의 모든 일, 어김없이 끝을 향해 간다. 작년부터 말석에 앉아 배우던 노자>도 완독이 코앞이다. 마지막 81장을 앞두고 이 문장을 다시 만났다.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해도 빠트리는 법이 없다. 어디 꼭 그런가. 세상에 죄와 벌이 무성하지만, 죄만 벌어지고 그에 합당한 벌은 어디에 있는가. 왜 세상은 잔인한 자들이 활개치는가. 왜 악독한 자들을 내버려 두는가. 수십 년 전, 광주를 덮친 비극만 해도 그랬다. 학살의 주범들은 그러고도 떵떵거리며 오래 살더라. 지금도 후손들은 은닉한 쩐으로 잘 먹고 잘 살더라. 쳇, 하늘의 그물을 믿..

칼럼읽다 2024.12.17

오래된 물건들을 치우며 깨달은 것

오래된 물건들을 치우며 깨달은 것24.12.13 08:53l최종 업데이트 24.12.13 08:53l 김숙귀(dafodil113)  라면을 끓이려고 냄비를 꺼내기 위해 싱크대 아래 수납장 문을 열자 검은 비닐봉지가 와르르 쏟아진다. 장을 보고 나서 물건을 담아온 봉지를 버리지 않고 모아둔 것이다. 냄비에 물을 담아 불 위에 얹은 뒤 쏟아진 봉지를 하나하나 포개고 접어 다시 수납장에 넣었다. 언젠가는 허드레라도 쓰일 데가 있을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은 작은 투룸 오피스텔이다. 집안은 여기저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로 더 좁아 보인다. 주방 한쪽에는 빈 병과 플라스틱 통들이 죽 늘어서 있고 냉장고 위에도 키친타월 뭉치와 지퍼백들이 올려져 있다. 컴퓨터 책상 아래와 주변에는 책들이 잔뜩 쌓여있고 책상 한..

칼럼읽다 2024.12.16

떡인가 빵인가

떡인가 빵인가입력 : 2024.12.12 20:35 수정 : 2024.12.12. 20:37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나왔다가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타기 위해 역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오래된 역사 안에 이런저런 물건들을 파는 작은 매장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정겨워 잠시 구경할 겸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작은 빵집 앞에 이르렀습니다. 어린 시절에 먹던 옛날 빵들이 많아 이것저것 골라 담는데, 문득 식빵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탕종’이란 큰 글씨가 쓰여 있는 식빵이었죠. 이 작은 빵집에서도 탕종을 보게 되다니 그만큼 탕종이 요즘 인기가 많기는 많나 봅니다. 사실 탕종(湯種)이란 빵의 종류라기 보다는 빵을 만드는 한 가지 방식입니다. 뜨거운 물을 사용해 60도 이상에..

칼럼읽다 2024.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