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AI교과서 [똑똑! 한국사회]
수정 2024-12-16 18:52 등록 2024-12-16 16:59
송아름 | 초등교사·동화작가
지난 11월28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용 도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모든 교실에서 인공지능 교과서를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학교장의 재량으로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도입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
는 인공지능 교과서가 언젠가는 오게 될 학교의 미래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 미래가 이렇게 빨리, 교사와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사기업 이름을 단 기차를 타고 온 것은 달갑지 않았다.
코로나 시기에 처음 화상수업에 사용한 줌을 시작으로 각종 플랫폼과 다양한 정보통신 기술들의 홍수를 경험하면서 종이책만 갖고 수업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은 편리했지만, 안주할 수 없게 변화 속도도 빨랐다. 어떤 프로그램을 익혀서 쓰고 있으면 더 좋은 프로그램이 나와서 새로 익히는 일이 자주 있었다. 과목별로 쓸 수 있는 프로그램도 다양했다. 이 많은 프로그램을 장점만 수렴해서 한군데 모아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인공지능 교과서 개발 이야기가 들렸다.
교육부는 2022년 12월 디지털교육기획관실을 신설하면서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개발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2023년 2월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사업을 발표했고, 8월 교과서 가이드라인 개발과 검정 공고를 냈다. 1년 뒤인 2024년 8월부터 검정 심사를 시작해 11월에 검정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예정대로라면 12월 내에 각 학교에서 교과서 선정을 끝내고,
활용 연수를 실시한 뒤 2025년 3월에 모든 학교에서 사용되었을 것이다.
지난 7월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고민정 의원실에서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에 의뢰하여 실시한 ‘에이아이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대한 학부모 인식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응답이 59.6%, 도입을 위한 사회적 공론화 절차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82.1%였다.
인공지능 교과서에 반대한다는 것이 아니라 신중히, 사회적 공론화 절차를 거쳐 도입하자는 의견이 다수였다.
그런데 교육부는 처음부터 결과물만 생각했던 것 같다.
부서를 만들자마자 사업을 발표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개발사를 대상으로 검정 공고를 냈다.
교사와 학부모 의견 수렴은 이미 다 완성된 교과서를 두고 형식적으로 실시했다.
지난 6월 결성한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현장 적합성 검토 지원단’(교사 2천여명)에서 교과서의 기능과 내용을 점검하여 의견을 제시하고, 이후 개발사가 타당성과 실현 가능성을 검토하여 반영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8월에야 교과서 검정 심사가 시작된 것을 고려하면
지원단이 의견을 제시한다 해도 개발사가 이를 반영할 시간이 길지 않다.
학부모 의견도 다수를 대상으로 한 의견 수렴 과정은 없고
시제품이 나온 지난 11월 간담회에서 모의시연을 하고 의견을 수렴한 것 정도가 눈에 띈다.
종이교과서와 병용하는 것이 효과적인 교과도 있을 수 있는데 국어, 기술, 가정을 제외하고는
인공지능 교과서로 전면화하는 계획은 재고가 필요해 보인다.
종이교과서는 권당 6천~9천원이고, 한해 예산이 5천억원이다.
인공지능 교과서는 연 구독료가 6만~10만원 선으로 예상되며,
인공지능 교과서로 쓸 한해 예산은 조 단위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런 큰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라면 시범학교를 운영하면서 개선점을 찾아 수정하고,
말 그대로 사회적 공론화를 거칠 시간을 충분히 두었어야 한다.
인공지능 교과서가 단순히 종이책이 전자책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교육 시스템의 변화를 가져올 것임은
모두가 예상하는 바다.
좋은 점도 있겠지만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 변화로 인한 충격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감당해야 한다.
인공지능 교과서를 학교 현장에 도입하고 무사히 안착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동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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