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오래된 물건들을 치우며 깨달은 것

닭털주 2024. 12. 16. 10:59

오래된 물건들을 치우며 깨달은 것

24.12.13 08:53l최종 업데이트 24.12.13 08:53l 김숙귀(dafodil113)

 

 

라면을 끓이려고 냄비를 꺼내기 위해 싱크대 아래 수납장 문을 열자 검은 비닐봉지가 와르르 쏟아진다. 장을 보고 나서 물건을 담아온 봉지를 버리지 않고 모아둔 것이다. 냄비에 물을 담아 불 위에 얹은 뒤 쏟아진 봉지를 하나하나 포개고 접어 다시 수납장에 넣었다.

언젠가는 허드레라도 쓰일 데가 있을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은 작은 투룸 오피스텔이다. 집안은 여기저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로 더 좁아 보인다.

주방 한쪽에는 빈 병과 플라스틱 통들이 죽 늘어서 있고 냉장고 위에도 키친타월 뭉치와 지퍼백들이 올려져 있다.

 

컴퓨터 책상 아래와 주변에는 책들이 잔뜩 쌓여있고 책상 한쪽에 있는 책장에는 그동안 사용했던 휴대폰들과 공 CD를 담은 통, 영화 비디오 테이프들. 그리고 뜯지도 않은 플로피 디스크까지 보관되어 있다.

 

언젠가부터 옷걸이로 변해버린 러닝머신과 운동용 자전거도 있고 오래되어 이제는 소리도 안나는 작은 오디오세트와 비디오테이프 재생기, 고장난 인쇄기, 작은 옷장에 다 넣지 못한 옷들을 담은 리빙박스가 침실 바깥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친구들을 불러 식사 한끼를 하는 일은 엄두를 낼 수도 없다.

 

얼마전 잘 익은 감을 나누어 주러 잠시 집에 들른 동생이 제발 못쓰는 물건은 좀 내다버리라며 잔소리를 하고 돌아갔다.

새삼 집안을 둘러 보았다.

내가 봐도 정말 복잡하고 어지럽다.

가끔 저장강박증은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버려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동생이 다녀간 며칠 뒤 마침내 집안 정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자잘한 것들은 종량제봉투에 담아 분리수거장에 내다놓고 무게가 나가는 물건들과 전자기기, 그리고 오래된 가전제품은 폐기물업체를 불러 치웠다.

 

내가 입을 옷들은 남겨두고 오래되어 낡은 옷들은 버리고

충분히 입을 수 있는 옷들은 깨끗하게 정리하여 아름다운 가게에 갖다주었다.

청소가 끝나고 집안을 둘러보니 이를 데 없는 홀가분함이 찾아왔다.

아끼던 난을 벗에게 주어버린 법정스님도 이처럼 홀가분했을까.

스님이 쓴 글 '무소유'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소유욕이 때로 우리의 눈을 멀게 한다. 우리는 어차피 빈 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가질 수 있다.'

 

비단 물건만이랴. 재물과 권력에 대한 욕망을 한가득 껴안고 살아가기도 한다.

더 가지고 싶고 더 높이 오르고 또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목구멍까지 차오른 욕심은

때로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자신을 찌를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요즘 두 눈으로 보며 실감하고 있다. 비움이 곧 채움인 것을...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칼럼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효율에 반대합니다  (1) 2024.12.18
노벨상, 노자, 비상계엄 그리고 한강  (1) 2024.12.17
떡인가 빵인가  (2) 2024.12.15
보통 이 정도 합니다  (6) 2024.12.13
존엄한 삶과 죽음을 위하여  (3) 2024.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