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이 정도 합니다
입력 : 2024.12.11 20:44 수정 : 2024.12.11. 20:47 김수동 탄탄주택협동조합 이사장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다. 언젠가는 이날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죽음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유족들은 슬퍼할 겨를 없이 당장 상(장례)을 치러야 한다.
이때부터 모든 주도권은 전문가(장례지도사)에게 넘어간다.
장례 절차와 의례, 장례식장 및 장사시설 이용, 빈소 설치와 조문 예절에 이르기까지 장례지도사는 일사천리로 안내한다. 상당 부분 이미 패키지화되어 있어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뭐가 뭔지 잘 몰라 하는 질문에 장례지도사는 친절함에 전문가의 권위를 담아 답을 한다.
“보통 이 정도 합니다.”
장례지도사가 많이 하는 말. 보통 이 정도 합니다.
무엇이 ‘보통’이고 ‘이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자세히 모른 채 다들 이렇게 ‘보통, 이 정도’의 장례를 치른다.
국내 상조시장은 누적 선수금 10조원, 누적 가입자 10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연평균 10% 이상의 놀라운 성장세다. 이렇게 공급자 주도의 시장에서 정신없이 3일장을 치르고 나면 훌쩍 2000만원가량이 들어간다. 보통, 이 정도의 비용은 전혀 보통이 아니며 상당히 비싸다.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는 지금의 접객 위주 3일장 문화를 바꿀 수는 없을까?
추모와 애도가 중심이 돼 삶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맞이하고 보내는 대안 장례는 왜 없냐는 의문에 찾아보니 무빈소 장례, 하루장, 가족장 등 일부 상조회사의 의미 있는 시도가 보인다.
나아가 죽음 이후 장례가 아닌 살아생전 파티를 여는 시도도 늘어나고 있다.
나에겐 90대 중반을 지나 100세를 바라보는 어머니가 있다.
“이러다 진짜 100살까지 사는 거 아니야?”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이 말을 하며 걱정한다.
언제일지 모르는 임종의 시간을 불안하게 기다리지 말고 어머니 살아계실 때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볼 수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딸은 독립해 집을 나가고 아내는 장인어른을 돌보기 위해 지방에 머물렀다. 이렇게 나는 갑자기 노모와 단둘이 지내게 되었다.
많은 시간 일상을 공유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매일매일 어머니로부터 놀라운 노년의 지혜를 발견한다.
틈틈이 기록하였고 지난 4년간 차곡차곡 쌓인 글이 꽤 된다.
그 글을 모아 어머니를 위한 책을 만들기로 했다.
이름하여 명랑노년 에세이 <냉정한 ○○씨(어머니 이름)>, 편집은 딸이 맡는다.
내년 봄 벚꽃이 활짝 필 때 단골 동네 카페에서 조촐한 출간기념회를 열 계획이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가족, 친지, 이웃이 모여 즐거운 파티를 열 것이다.
이 시간은 ‘보통’ ‘이 정도’가 아닌 특별한 내 어머니를 위한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어머니가 보여주신 노년의 지혜를 아들이 글로 쓰고 손녀가 책으로 만들어 선물할 것이다.
죽는 것보다 늙는 게 더 두렵다는 이 시대에 명랑한 노년을 꿈꾸는 모든 이에게 어머니의 지혜를 전하고 싶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어머니가 좋아하는 천상병의 시 ‘귀천’. 아직 끝나지 않은 이 땅에서의 소풍을 작고 아름답게 기억하고 함께 축하하리라.
어머니의 시 낭송을 듣고 싶은데, 하시려나?
'칼럼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래된 물건들을 치우며 깨달은 것 (3) | 2024.12.16 |
---|---|
떡인가 빵인가 (2) | 2024.12.15 |
존엄한 삶과 죽음을 위하여 (3) | 2024.12.12 |
조용필, 말년의 양식 (3) | 2024.12.07 |
차마 어찌할 수 없는 것들 (4) | 2024.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