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존엄한 삶과 죽음을 위하여

닭털주 2024. 12. 12. 09:11

존엄한 삶과 죽음을 위하여

입력 : 2024.12.08 20:26 수정 : 2024.12.08. 20:29 김기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얼마 전 영화 <플랜 75>를 본 뒤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이 영화는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일본 정부가 노인들에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가상의 정책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노인들은 가족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죽음에 대한 상담을 받고, 죽음을 위한 지원금을 신청하며, 죽음을 준비합니다.

또 다른 영화 <룸 넥스트 도어>에서는 말기암 환자가 스스로 선택한 죽음을 준비하며 오랜 친구와 재회해 삶과 죽음에 대해 탐구하는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이 두 영화는 초고령 사회에서 더 중요해질 삶과 죽음의 존엄성에 대해 무겁고 슬픈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우리는 삶의 끝과 죽음의 앞에 존엄하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2025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에 달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게 됩니다. 수명 연장과 고령화는 단순히 인구구조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좋은 죽음, 즉 존엄한 죽음에 대한 고민을 요구합니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많은 노인이 고립과 외로움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것을 죽음으로 향하는 좋은 과정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존엄한 죽음을 선택지로 두는 것은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가족과 사회가 강요하는 무언의 압박이 개인에게 작용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존엄한 죽음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존엄한 삶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노인들이 자신을 필요한 존재로 느끼고, 외로움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찾는다면 존엄사를 선택지로 두고 고민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 사회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노년기의 경제적 안정성을 보장하고,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지원하며,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 서로 유대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지원체계가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한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관 변화와 공동체 의식 재구성을 요구합니다.

 

노인들의 삶의 질과 죽음에 대한 태도는 사회적 요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많습니다. 외로움을 덜 느끼고, 사회적으로 존재감을 인정받고, 배려와 공감을 경험하는 노인들은 그렇지 않은 노인들에 비해 삶의 존엄성을 더 강하게 느낍니다. 이는 존엄한 삶을 만드는 일이 단순히 개인의 일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공동체적 몫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법학, 의학, 종교, 윤리, 철학적 이슈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존엄사 문제를 공론화할 때 다양한 시각이 균형 있게 반영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존엄사를 둘러싼 논의가 죽음에 머무르지 않고, 삶을 어떻게 존엄하게 살아낼 수 있을지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존엄한 죽음 앞에는 여전히 존엄한 삶이 있습니다. 노인들이 삶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느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존엄을 지키는 길입니다.

 

영화 <플랜 75><룸 넥스트 도어>는 주인공들이 죽음을 선택한다는 화두를 던졌지만,

우리 사회가 진정 고민해야 할 것은 죽음이전에 입니다.

노인들이 삶을 살아갈 이유를 잃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존엄한 삶의 길을 모색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존엄사와 맞닿아 있는 존엄한 삶의 본질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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