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강하면 그늘이 짙다
입력 : 2025.02.13 21:24 수정 : 2025.02.13. 21:29 김지연 사진작가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구례의 한 정미소. ‘정미소’ 연작 중에서, 2002. ⓒ김지연
햇볕이 강한 날 그림자가 짙다는 것은 반대로 그림자가 강한 날 햇살이 좋다는 것이다.
어느 영화에서 두 사람이 그림자를 포개며 ‘이러면 그림자 색이 더 짙어질까?’ 하며 그림자를 서로 겹쳐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볕이 흐린 날이라면 ‘그렇다’ ‘아니다’라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할 수도 있겠다. 나는 그 생각을 해보며 산책길에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의 그림자에 내 그림자를 슬쩍 겹쳐보았다. 그림자 농도는 변함이 없었다.
한 사람의 슬픔에 다른 사람의 슬픔이 더하더라도 슬픔에는 차이가 없을 것 같다.
햇볕이 강렬한 날 사진을 찍으면 더 잘 나올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진가는 한낮의 강렬한 햇볕을 피한다.
청명한 날을 선호하는 사진이라도 이른 아침이나 오후에 찍는 경향이 많다.
햇살이 너무 강렬하면 밝은 부분은 색이 날아가고 어두운 부분은 검게 뭉쳐버려서
디테일을 잘 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건물 사진을 찍을 때는 흐린 날의 확산광을 이용하면 컬러도 부드럽고 사물의 섬세한 부분까지 살릴 수 있다.
사람들은 컬러 사진이 지나치게 사실적이어서 예술을 위한 매체로는 적합지 않다는 생각에서 흑백사진을 선호한다.
그런데 윌리엄 이글스턴, 스테판 쇼어 등 사진가들이 부드러운 색감과 자연스러운 순간의 감정을 담은
‘뉴 컬러’(New color) 시대를 열어 컬러 사진의 판도를 바꾸었다.
사진가들이 흑백으로 할 것인지 컬러로 할 것인지는 주제나 개념에 따라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아직도 필름 카메라를 선호하는 작가가 있지만 필름과 스캔, 인화 과정에서 엄청난 비용이 든다.
사진은 미술에 비해서 한국 시장에서는 판로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예술가가 그렇듯이 사진가들은 사진으로 먹고살 수가 없어서
아르바이트 같은 다른 직업으로 버티고 있다.
날마다 햇볕이 좋은 날을 기대할 수는 없다.
또한, 그 좋은 날에도 그림자가 짙다는 것은 우리 사회 현상과 비견해 볼 수 있다.
일부 특권층에만 쏟아지는 빛이 아니라 어두운 그늘에도 밝음을 누릴 수 있는 사회 구조를
인간이기에 만들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산을 내려오는데 미세먼지로 늘 아스라이 보이던 먼 산이 오늘따라 가까워 보인다.
짙은 그림자를 데리고 뚜렷한 자태의 산봉우리를 향하여 눈인사를 건네며 언덕길을 내려왔다.
'사진놀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은 원래 곤란하다는 듯 (0) | 2025.01.31 |
---|---|
푸른색 한 줄기 (1) | 2025.01.20 |
신호등이 가르쳐준 절제와 희망 [포토에세이] (0) | 2025.01.18 |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1) | 2025.01.07 |
현장 뛰는 다큐 사진가의 2024년 사진 소풍 (1) | 2024.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