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미소
입력 2026.04.15 19:48
조은 시인
병원에서 치료되지 않는 통증에 시달리다 누군가의 간곡한 권유에 마음이 움직여 일종의 대체의학이라 할 만한 제품을 구매해 쓰고 있다.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스티브 잡스의 투병기를 의식하던 나는 첫날부터 순하게 찾아오는 변화에 조금씩 놀라다가 누적된 변화에 적잖이 당황했다. 같은 건물에 사는 20대부터 내가 속한 60대까지 스트레스로 인한 만성질환에 숨쉬기조차 힘들어하는 이들을 여럿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들이 통증을 호소할 때마다 한번 써보라고 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껏 연필 한 자루 팔아본 적 없는 내가 순수한 마음으로 권하는 제품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다행히 이들은 덜 아프구나!’
생각은 이어졌다.
‘영업사원들은 멘털이 대단하겠구나!’
살면서 느끼는 불편함 자체가 통증이라는 생각을 한 것은 최근이다.
나 자신의 고쳐지지 않는 나쁜 습관을 깨달을 때나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실감할 때마다 느끼는 불편함이 불면으로 이어지며 일상을 해쳐도 왜 그것이 통증임을 깨닫지 못했을까. 몸의 통증은 해소하려 늘 애쓰면서도.
내가 쓰는 제품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의 결재권자인 젊디젊은 자녀가 했다는 말이 귓전에 울린다.
“또 여러 사람이 사기당하게 생겼군요.”
그분의 상속권자인 자녀의 말은 젊었던 내가 나이 든 부모를 대했던 태도에 대해 역지사지하는 기회가 되었다. 일찍 머리가 센 쉰 살의 어머니가 염색하는 것을 보며 나는 뭐라고 했던가. 노화를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늙어야 한다고 한말씀했으니 돌이켜보면 얼마나 낯 뜨거운가. 그랬던 내가 어머니보다 빠른 사십대에 염색을 시작해 여태 하고 있으니 돌이켜보면 좋은 시절 속 인간의 사고엔 뻔뻔함과 모순이 많다. 애쓰지 않아도 살다보면 이렇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며 지금의 나보다는 인격이 높았던 고인들은 다 이해했으리라 미소 짓는 순간이 온다.
과거엔 소설을 읽으며 등장인물을 묘사하는 여러 병리적 성향들이 너무 과장되었다고 느끼곤 했다. 지금 내 주변엔 그런 유형보다 더 소설처럼 앓고 있는 이들이 넘친다.
오늘 지나온 길에선 수면장애 강연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수면은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의 척도인지라 나는 얼른 사진을 찍어 아픈 20·30대들에게 보냈다. 그들이 같이 가서 강연을 들어보자고 하면, 기꺼이 동행할 생각이다.
나 역시 불면의 밤이 잦고, 잘 대처하기 위해 다짐했던 행동 지침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허무감에 젖을 때가 있으니.
묵묵히 생로병사의 길을 걸었던 선인들이 얼마나 수더분했는지 점점 감탄하게 된다.
인류 대재앙이라 할 만한 노화의 절대 고독 속에서도 대부분의 선인들은 고통을 밖으로 배설하지 않고 묵묵히 견뎠다. 우리 집안의 딱 한 어른만이 유난스레 노화의 고통을 자주 호소하곤 했는데, 그게 그분의 타고난 성정이라며 여럿이 수군대던 장면이 떠오른다. 신여성이었던 그분은 폐경도 요란했는데, 어렸던 나는 그분으로 인해 폐경이라는 말뜻을 초경이라는 말뜻보다 일찍 알았다.
노화라는 단어에 담긴 긍정적 이미지는 거의 사라졌다.
내가 아는 노인들은 대부분 죄스러워하며 노년을 살고 있다.
열심히, 묵묵히 살았으나 제자리를 감지덕지하며 움츠러드는 그들에게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한다.
“훌륭하게 사셨어요! 지금 젊은이들은 누구도 선생님처럼 살지 못해요!”
통증이 줄어드니 당장 밖으로 나가서 걷게 된다.
어느새 후루룩 져버린 봄꽃 못지않게 아름다운 연초록이 시시각각 펼쳐지는 길을 걸으며
나는 생각한다.
꽃은 저마다의 내면에서 언제든 만개할 수 있다고.
고목에 핀 꽃은 더욱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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