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틈바구니에서 시작하기

닭털주 2026. 5. 1. 17:27

틈바구니에서 시작하기

 

수정 2026.04.29 20:12

 

오은 시인

 

 

최근에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창실 옮김, 문학동네, 2016)을 다시 읽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의 요건 중 하나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게 보이는 것이다. 그때마다 책도, 그 책을 읽는 나도 다시 태어난다고 느낀다. 끊임없는 노동, 기계에 대체되는 노동력,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마는 반짝이는 한때들, 속도와 효율 앞에서 점점 희미해지는 영혼.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어김없이 기진맥진해진다. ‘고독이 시끄러울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고독만큼 시끄러운 것은 없다라는 문장에 가닿는 여정이 거기에 있다.

 

이번에 만나 상념에 잠긴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래도 저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연민과 사랑이 분명히 존재한다. 오랫동안 내가 잊고 있었고,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그것이.” 잊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내며 사는 게 너무 많다. 그것이 너무 커다래서, 혹은 너무 자잘해서. 연민과 사랑처럼 그 안에 내내 있어서, 또는 거기에서 별수 없이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어서. 지키지 못한 새해의 다짐이나 인사치레와 다를 바 없는 약속이 매일의 틈바구니에서 싸리의 매듭처럼 비죽이 솟아난다.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미국 출장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 책을 읽었다.

하늘이 바로 옆에 있었다. 하늘 안에서 인간적인 게 무엇일지, 하늘을 넘어서는 게 있다면 무엇일지 가만히 생각했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에 관해, 내일을 기약하고 또 한 발 내딛게 하는 믿음에 관해. 전쟁이 끊이지 않고 혐오와 차별이 가득한 이곳에서, 그래도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빛에 관해. 그 빛은 아마 한 마디나 한 끗, 한 올에 가까울 것이다. 그 빛으로 바구니를 만들고 다니면서도 바구니의 쓰임이나 가치에 관해, 종래에는 바구니의 존재 자체를 잊고 마는 게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총 8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장은 비슷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1장의 문장은 2장에서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를 압축하고 있다로 이어진다. 우리의 나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떤 날은 좀 더 화창하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희망에 부풀기도 할 테지만, 반복되는 날을 살아가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나다.

 

주변을 살피고 나 자신을 돌보며, 하늘 아래서 때때로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떠올리기도 하면서. 삼십오 년이라는 시간 앞에서는 누구든 잠시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일어났다’ ‘어떤 변화가 생겼다앞에 있는 무수한 고독, 더할 나위 없는 시끄러움에 관해 더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있는 힘을 다하여, 없는 힘까지 그러모아 매일 분투하는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하늘은 매양 높고 그 안에 몸을 싣는 날은 드물지만, 하늘을 넘어서는 존재를 그려볼 수 있는 것도 사람이다. 높은 것보다 더 높은 것, 아득함을 넘어 아예 보이지 않는 것, 이런 것들로 바구니는 겨우 완성될 것이다. 바구니에 나 있는 틈이 바구니를 바구니답게 만들 듯, 틈을 낮잡아 이르는 말인 틈바구니야말로 나의 현존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촘촘하고 빽빽한 상황을 박차고 일어나는 것, 거기에 내 숨통이 있다.

 

틈바구니에서 틈이 아닌 바구니를 상상한다. 틈으로 엮이고 짜여 완성되는 바구니를 그려본다. 틈을 이루는 것들을 응시한다. 한 마디, 한 끗, 한 올 등에서 다시 시작한다. 책을 읽고 소중한 사람과 별것 아닌 대화를 나누고 나만의 지도를 그리는 마음으로 산책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하늘을 바라보는 것, 틈을 벌려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상상하는 것. 상상한 것을 잊지 않는 것.

 

틈을 벌려야 마침내 이야기가 시작된다.

보후밀 흐라발이 억압과 혼돈의 틈바구니를 헤집고 책에 관한 이 책을 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