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어린이답다는 말

닭털주 2026. 5. 14. 20:01

어린이답다는 말

 

수정 2026.05.13 20:07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사이, 아직 초등학생이니 자신은 어린이가 맞다고 주장하는 조카를 학원에서 데려오던 길이었다. 용돈으로 어린이날을 축하받았다는 녀석에게 어버이날 준비는 했느냐고 물었다. 학교에서 다 같이 부모님께 드릴 감사 카드를 만들었단다.

 

고모, 그런데 애들이 편지를 못 쓰더라?”

어깨를 으쓱하는 아이에게 너는, 잘 썼어?” 물으니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럼!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있는 그대로 쓰면 되지! 뭐 어려워?”

 

야무지기가 원! ‘어린이답다하며 볼을 쓰다듬어 주는데, 이내 마음이 켕겼다.

어린이다운 게 뭘까?

편지를 쓰기 어려워했다는 녀석의 친구들은 무엇 때문에 주저했을까?

있는 그대로 쓰면 된다는 조카의 명랑한 확신은 정말 어린이다운 모습인 걸까?

 

아이들이 인정받는어린이다움에는 어른의 기대가 녹아 있다.

<제국의 어린이들>에는 이 관계가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책은 1938년과 1939년에 열린 제1·2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수상작을 바탕으로, 조선에 살던 아이들의 세계를 펼친다.

 

책에는 조선인 어린이와 조선에 살던 재조일본인 어린이의 글이 교차한다.

일본인 어린이의 글에서는 제국의 주체로 길러지는 감각이,

조선인 어린이의 글에서는 순응하는 착한 어린이의 얼굴이 읽힌다.

 

일례로 충남에 살던 한 조선인 아이가 총독부에 근무하는 경성의 숙부댁에 다녀와서 쓴 경성구경을 보면, 경성에 도착해 이동하던 중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물은 아이는 경성에 오면 먼저 조선신궁으로 가서 참배를 하는 거다라는 숙부의 말을 듣는다.

아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너무 창피했다. 숙부는 역시 훌륭하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아이의 감정은 아이의 것이지만, 그 감정이 향해야 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당시에는 학교 문턱에도 닿지 못한 채 자기 일상을 글로 남길 기회조차 갖지 못한 아이들이 더 많았다. 그들에게 어린이다움이 없었을 리 없다. 다만 기록되지 못한 채 흩어졌다.

 

시대가 흘러도 어린이가 로서 존재하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은 여전하다.

지난달 취재차 방문한 제주의 한 치유농장에서 들은 이야기가 질문을 현재로 불러왔다.

농장에서는 초등학교 방과후아카데미 친구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돌담 두른 감귤밭에서 다회차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서 농부는 아이들에게 우선 감귤밭에서 자유롭게 시간을 가져보라고 말한다. 그런 다음 제안한다. 귤나무가 잘 자라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라고. 햇살, 바람, , , 곤충, 돌보는 사람까지 아이들은 귤나무를 살리는 것들을 곧잘 찾아낸다.

그런데 그럼 나를 잘 자라게 해주는 것은 뭘까?” 하고 물으면 주위가 고요해지곤 한다.

생각해본 적 없어요’ ‘잘 모르겠어요정도는 예상했지만,

안 좋은 건 많은데, 그건 안 돼요?”라는 말 앞에서 농부는 멈칫할 수밖에 없다.

 

어버이날 카드에 무얼 써야 할지 망설인 조카의 친구들과, ‘나를 잘 자라게 해주는 것을 선뜻 떠올리지 못한 아이들을 그저 조심성이 많거나 생각이 깊은 아이들이라고만 넘기기에는 어쩐지 부끄러워진다.

 

다행히 농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거듭되며 아이들은 조금씩 달라졌다고 했다.

자신을 자라게 하는 존재로 농장과 농부를 꼽으며,

그곳에 머무는 시간이 좋고 기다려진다는 아이도 생겼다.

<제국의 어린이들>의 저자 이영은이 하지만 어린이들은 자신이 어느 지역에 살건, 어떤 계급에 속하건 즐거운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신비한 존재라고 한 것처럼, 아이들에게는 어떤 시대, 어떤 어른도 끝내 다 길들일 수 없는 힘이 있다.

 

아이는 부모나 사회의 기대에 맞춰 완성되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저마다의 감각과 속도로 자라는 존재다.

그렇다면 어른이 해야 할 일은 아이를 우리가 바라는 대로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라도록 질문을 곁에 놓아두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정답을 맞히게 하는 질문이 아니라,

귤나무가 자라는 조건을 찾듯 자신을 자라게 하는 것들을

아이 스스로 알아차리게 하는 질문 말이다.

아무래도 꽤 성가신 고모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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