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시
수정 2026.05.17 19:54
황규관 시인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조건이나 문화, 혹은 사회적 관계 등이 시 쓰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내내 믿어왔다. 사실 인간의 마음과 내면이라는 것은 선험적으로 또는 ‘혼자, 오롯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와 같은 것들과 한 몸인 채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 탓이기도 할 테고 그동안 만났던 사람이나 읽었던 책의 영향도 깊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이런 관념마저도 나의 것만이 아닌 것이다.
사실 관념이니 마음이니 내면이니 나누는 것도 우스운 일인데 몸과 마음은 본래 분리 불가능하고 우리가 사는 세계와도 그렇다.
인공지능(AI)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디지털 기술이 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디지털 기술의 성격 자체가 시에 침입하기엔 너무도 다르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디지털(1과 0)에는 극단적으로 환원주의적 속성이 있지만 시는 세계의 복잡한 맥락을 품은 추상을 어쩔 수 없이 갖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단순한 길이를 기준으로 해서 시가 디지털 콘텐츠와 친연성이 있다는 말까지 있었던 것을 보면 디지털 기술에 대한 태만한 인식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던 듯하다.
하지만 챗GPT의 등장으로 기존의 생각을 버리고 디지털 기술이 언어에 심대한 영향을 미쳐왔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됐다. 디지털 기술과 언어 사이의 문화적 관계 이전에 디지털 기술 환경으로 인해 사람의 감각 체계 자체가 변했던 것이다. 2000년대 들어 등장한 낯선 시들이 혹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금융자본주의라는 사회적, 문화적 배경과 관계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 적이 있지만 우리의 감각이나 사유 체계 자체가 변한 단계는 아니라고 봤다.
디지털 환경, 감각 체계 자체를 바꿔
챗GPT의 등장과 더불어 가장 허망하게 무너진 쪽은 언어를 다루는 분야였다.
현재 대부분의 인문학도들은 AI와의 공존(?)을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문학이라는 것이 대학을 중심으로 한 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주로 이끌다 보니 어떤 허약성이 빠르게 노출됐다고나 할까. 아니면 새로움에 예민한 젊은 세대를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만나다 보니 더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직업적 특성 때문에.
문제는 어떤 현상의 은폐된 맥락을 첨단에서 반응한다는 인문학이 도리어 새로운 기술 현상에 매몰됨으로써 정신적 좌표 설정에 방해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시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언어의 본질과 심층에 가장 가까이 있다는 시는 어떨까.
수년 전에 ‘시 쓰기 AI’에 의존해 시 쓰는 행위를 비판한 적이 있지만, 시 쓰기가 사회적 작업이 아니다 보니 지표나 데이터 같은 것으로 포착되지는 않는다.
다만 간간이 AI 리터러시 같은 주제를 다루는 비평문을 읽다 보면,
AI가 시 쓰기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구나, 짐작이 된다.
문제는 일반적인 글이든 시든 인간의 언어 활동을 그 결과를 놓고 평가하는 퇴락한 문화에 있다. 이래서 AI를 선용하자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 쓰기는 자신의 고유한 느낌의 표현이며 그것도 느낌을 만들어내는 시원까지,
즉 감각 세계 이전의 진리까지 언어화하는 고투이다 보니 모호해지기도 하고 난해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은유나 상징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은유와 상징은 시적 표현의 결과물이지 그 역이 아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과 AI는 시의 언어를 평면화하는 중으로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시의 언어는 사물과 대상의 표면을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특성을 보여주며, 작품 전체에서 풍기는 아우라(생기)가 아니라 ‘멋진’ 표현을 좋아하는 이른바 텍스트-힙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렇게 언어가 그 깊이를 잃으면
우리 삶이 처한 문제의 복잡한 맥락과 역사, 은폐된 진실에 접근할 능력도 잃게 된다.
소셜미디어에 피상적인 분석이나 조롱, 혐오, 편 가르기 등이 유행하다 못해
상품이 되는 것은 그래서 큰 문제다.
그게 무엇이든 상품이 된다는 것은 쓰레기가 될 운명을 갖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쓰레기는 상품의 필연적 귀결이기 때문이다.
시, 언어 데이터 조합으로 전락하나
하이데거는 “기술의 본질은 아주 서서히 드러난다”면서 이 “세계의 밤”에 시인들에게 특별한 주문을 한 적이 있다.
“세계의 밤의 어둠 속으로 달아나버린” 온전한 것을 노래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입장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시가 작품화되는 과정에 AI(의 알고리즘과 편리)가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며, 이제 시도 언어 데이터의 조합으로 전락 중이라는 사실이다.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는, 뇌도 전자기기와 같이 온·오프가 가능한 것처럼,
머리를 취미로 쓰는 세상이라고 말하던데,
인간의 사고가 취미가 된 세상에서는 시가 언어 데이터의 조합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 이상한 현상은 아니다.
그걸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이 이상한 것이지.
‘악의 평범성’은 이렇게 퍼져 나간다.
드디어 완벽한 가치 전도의 세계가 도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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