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장터 입점 좌절기 [서울 말고]
수정 2026-05-17 19:34

경상도의 한 오일장. 연합뉴스
권영란 | 작가·‘경상의 말들’ 저자
지리산 자락 시골 장터 안에 점포 한 칸을 갖고 싶었다.
평소에는 책과 지역예술인들의 작품을 팔며 소소한 일상 모임을 꾸리고 장날이면 나물 팔러온 할매 옆에서 버스킹도 하고 주민들과 어울려 장터 골목을 따라 북 플리마켓이나 아트마켓을 하고…. 내 멋대로 그려본 문화 점방 ‘꽃피는 산청’ 프로젝트였다.
16.53㎡ 한 칸 얻으면 ‘시장 살리기’에 뭐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농어촌 오일장 점포는 대부분 지방자치단체 소유의 공공재산이다.
상인들은 무상이나 저리로 입점해 오랜 기간 장사를 해온 탓인지 사유재산으로 여기고 있다.
셔터를 내린 점포는 대부분 창고로 쓰이고 골목 안에는 함부로 적재된 물건들이 쌓여 있다. 장날이 돼도 장터 점포의 반이나 문을 열었을까. 이마저도 개점휴업 상태이다. 상인들에게는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 물품도 방안도 없었다.
상인들만큼 시장도 고령화하고 있다.
현재 전국 농어촌 전통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내가 사는 산청군 신안면에서 다리(단성교)를 건너면 단성면 소재지가 나온다.
강변 옆 오래된 마을이다. 그곳에는 단성시장이 있다.
45개 점포가 있는 작은 시장이다.
2019년부터 정비사업을 하면서 현대화 시설을 갖췄다.
상설가게는 몇 안 되고 창고로 쓰이는 점포가 제법 보였다.
장날이어도 정오가 되면 파장 분위기였다. 아까웠다.
단성시장은 대전-통영 고속도로 나들목이 있고 국도 20호선을 끼고 지리산 들어가는 길목이라 접근성이 좋다. 거기다 주변이 너르고 여유롭고 볕이 잘 드는 곳이다. 뭔가 조금만,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면 산청지역을 알릴 또 다른 장소가 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물론 산청주민 1인으로서의 지극히 사적인 상상이었다.
하여튼 이사 온 2년 내내 빈 점포가 생기길 기다렸다.
장날과 평일, 여러차례 시장을 돌면서 분위기를 탐색하기도 했다.
드디어 지난 2월 말 산청군 누리집에 단성시장 3개 점포 입점자 모집 공고가 떴다.
주변 청년들과 친구들을 꼬드겼다.
같이 입점하자고, 같이 일해 보자고.
엇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한꺼번에 들어가면 정말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3월 초 각자 점포 운영계획과 기획안을 제출하고 그달 몇주 뒤 면접을 치렀다.
면접날, 대기실에 있는 10여명을 보고 순간 흠칫했다.
기존 상인이거나 토박이 주민인 듯했는데 경계를 하는 게 역력했다.
사전 시장 조사를 할 때도 그랬지만 상인들은 민감했다.
뭔가 내 생각과는 다름을 그제야 알았다.
네명의 면접위원 앞에서 간단하게 운영계획 등 발표를 하는데 셋은 고개를 숙인 채 눈 한번 맞추지 않고 한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질의도 없었다.
형식적인 절차구나, 싶었다.
귓가에 ‘택도 아이다’ 소리가 우웅댔다.
다음날 ‘미선정’이라는 짧은 문자를 받았다.
개개인 문자로 알렸는지 입점자 결과는 누리집에 공개되지 않았다.
어떤 이유로 탈락이었을까, 한참 생각했다.
궁금했다.
군 누리집에 공개적으로 평가 기준 등 네가지 질문을 했고 일주일 뒤 기계적인 답변을 들었다. 딱히 납득할 만한 답변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다만 시장은 공공자산이라는 것,
기존 분위기와 방식을 벗어나 색다른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주민들이 있다는 것,
공적인 일에는 절차와 공정성, 투명성이 중요하다는 것,
주민들이 문제 삼을 수 있다는 것 등 경각심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랬다.
토박이 상인들의 벽은 높았고 행정의 인식이나 의지는 별반 기대할 게 없었다.
아쉬워하는 내 주변에서는 더러 인맥을 들먹였고
더러는 절차대로 하는 게 옳았다고도 말했다.
그러다가 결론은 시골 장터를 확 바꿀 맞춤한 조례 제정으로 목소리가 모였다.
암튼, ‘꽃피는 산청’ 입점 프로젝트는 무산됐다.
순진하게도 잠시 즐거운 꿈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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