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걷는 것과 걸어지는 것

닭털주 2026. 5. 20. 11:39

걷는 것과 걸어지는 것

 

수정 2026.05.19 20:07

 

김월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원장

 

 

출근길, 버스를 타러 정해진 길을 걷는다.

지하철을 환승할 때는 정해진 환승통로로 걷는다.

그럴 때면 종종 내가 길을 걷는 것인지,

누군가가 정해 놓은 길을 따라 그저 걸어지는 것인지 헷갈리곤 한다.

 

인공지능(AI)의 성능이 눈부시게 진보하고 있다. 몹시도 똘똘해졌다.

그런 AI를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대학에서 학생은 AI로 과제를 작성하고 교수는 AI를 활용해 채점한다.

AI에 의존해 논문도 작성하고, 대학원생 논문 지도도 AI의 도움을 받는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그들은 과연 내가 평가하며 지도하는 것일까,

아니면 AI가 인도하는 대로 평가하며 지도하는 걸까?

 

사람은 외부의 영향을 받는 존재다.

공자가 사람은 유사한 본성을 타고 태어나지만 자라면서 환경의 영향 아래 서로 간에 사뭇 달라진다고 통찰한 이유다.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기술도 있다.

장자는 기계를 사용하면 기계를 닮은 마음을 지니게 되어 인간으로서의 천성을 잃게 된다고 경고했다.

편리하기에 기술을 사용하지만

그렇게 기술을 사용하다 보면 편리함에 젖어들어

기계가 하는 대로 그저 따라 하게 된다는 것이다.

 

AI 혁명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오늘날의 대전환은 그래서 심상치 않다.

과학기술의 진보가 편리함을 타고 사고와 같은 인간 고유의 영역을 늦지 않은 속도로 파고들고 있다.

그 결과 내가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AI가 일러준 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인지, 그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그저 AI가 편리해 사용할 따름인데 AI에 의존해 사유하는 일이 갈수록 늘어난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AI 도움 없이는 사유가 잘 안 되는 일도 벌어질 것이다.

 

며칠 전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한 연등행렬이 있었다.

주지하듯 종교는 인간만의 영역이다.

신의 오묘한 진리를 깨우치는 것만을 말함이 아니다.

종교인으로서 살아가는 모든 것이 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바이다.

 

그런데 올해 연등행렬은 수계를 받은 로봇 스님 네 대, 아니 네 명(?)이 이끌었다.

로봇 스님들은 아직까지는 걸어지는 것이었으리라.

그런데 그 뒤를 따랐던 사람들은 스스로 걷는 것이었을까,

로봇 스님을 따라 걸어지는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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