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낱말들
수정 2026.06.04 20:04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공장=햇빛, 이산화탄소, 물을 반죽하여 광합성하는 나무 앞에 하나 더 있다.
시선의 길이를 조절할 수 없어 볼 수 없는 운명의 공장.
#바위=깔딱고개 끝에 엉거주춤 앉아 있다가, 그래도 나를 보고 승천하겠다는 듯, 어서 오시게, 아우, 눈 뜨며 손 내미는 바위를 만나면 어떻게 응대하죠?
#반지름=여기에서 저기까지가 지름일 리가 없다. 저기 저 너머로 그만큼의 반지름이 최소한 더 있다. 그림자를 반납해야 보여주는 그 나머지 반지름.
#그림자=언젠가 필요하면 따고 들어오너라. 내 발목에 채워주신 열쇠.
#독서=책만큼 많은 골짜기가 있으랴.
낫 같은 기역. 호미 같은 니은. 당그래 같은 디귿. 어디로 굴러떨어지기 직전인 가슴을 파헤치는 농기구들. #편집=본다는 건 세상을 편집하는 것이다. 마음이 조립하는 바, 저기가 바로 거기다. 편집은 편집부는 물론 출판사보다 크고 지구보다 넓다. 휘어진 공중을 지휘하는 두 눈의 편집.
#화분=내가 그 꽃을 보는 건 눈으로 풍경을 한 삽 뜨는 것.
#정치=신체마다 대응하는 죄의 항목이 있다.
바닥을 어지럽힌 발목의 죄.
물건을 탐한 손의 죄.
난해한 표정 지은 얼굴의 죄.
우묵한 등 뒤의 죄.
숨는 죄가 무겁다.
입에서 말을 내보낸 이빨의 죄.
#손가락=열 나라에서 온 사신들이 선물 달라 날뛴다. 우리가 명사를 좋아하는 건 죄 이것을 달고 있기 때문.
#나무=전생에 무슨 선업을 쌓았나. 누대에 걸쳐 그토록 원했던 자유와 독립을 이제사 이루었다. 입을 없애고 잎, 발을 버리고 뿌리. 나무는 제자리라서 둘을 획득했다.
#슬픔=인생은 슬픔. 근데 너만 그런 게 아니야. 하늘에서 자주 오잖아. 공중도 울잖아. 그 눈물로 나무들 쑥쑥 자람. 어제 비를 빨던 힘으로 꽃봉오리는 오늘 꽃으로 활짝 터짐.
#소금=희게 부서지는 물결. 바다가 맹물이었다면 여긴 진즉에 부패했다.
소금, 저걸 녹이느라 바다는 바쁘다. 산의 높이를 해발로 정하듯 맛의 기준은 짠맛.
#망종=아, 날씨가 좋다. 이 몽글몽글한 햇살 아래 까끌한 곡식 씨앗을 심는 날, 망종(芒種)이다.
#유월=계절도 저를 어떻게 해보고 싶은 모양이다. 유월이 되자, 찬란한 햇살을 비스듬히 잘게 부숴 눈썹 밑을 찔러 한 움큼 내 눈물을 빼앗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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