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만드는 길
수정 2026.06.02 20:19
김기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던 시절의 일이다.
강의동과 강의동 사이는 정식 보도로 단정하게 이어져 있었지만, 잔디밭이 워낙 넓어 그 길로 가려면 한참을 돌아야 했다.
수업이 끝나면 다음 강의실까지 10분 안에 닿아야 했으니, 보도를 따라 걷기엔 늘 빠듯했다.
학생도 교수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잔디밭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그편이 더 빨랐기 때문이다.
학기 초에는 잔디 사이로 희미한 발자국만 어른거렸다.
그러나 발자국은 또 다른 발자국을 불렀고, 한 학기가 저물 무렵 그 자리엔 풀이 사라지고 단단한 흙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놀라운 일은 다음 학기 개강날 일어났다.
동료들과 그 앞을 지나다 우리는 그만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잔디밭 속 흙길 위로 매끈한 보도블록이 새로 깔려 있었던 것이다.
학교는 사람들이 실제로 걸어 다닌 자리를 비로소 ‘길’로 인정해준 셈이었다.
도시계획에서는 이런 길을 ‘욕망의 길’ 혹은 ‘희망선’이라 부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떤 표지판이 없어도,
사람의 마음이 향하는 곳에 결국 길이 난다는 뜻이다.
정해진 길보다 마음이 먼저라는 이야기다.
중노년의 삶을 오래 들여다보다 보면 그 시절 잔디밭 보도블록이 떠오른다.
어떤 분은 평생 누군가가 깔아준 보도블록만 따라 걷는다.
“내 나이엔 이쯤이 적당하다”며 정해진 길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
또 어떤 분은 자기 발걸음으로 없던 길을 낸다.
이 차이는 능력이나 형편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가고 싶은 곳을 마음속에 또렷이 그리는 사람일수록 실제로 그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쉰에 시작한 수영,
예순에 시작한 그림 공부,
일흔에 펴낸 첫 시집,
여든에 붙든 외국어,
손주와 편지를 주고받고 싶어 일흔에 컴퓨터 자판을 익힌 어르신.
모두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 분들이 아니다.
마음이 먼저 그곳에 가 있었기에 발걸음이 뒤를 따랐을 뿐이다.
오랜 세월 노년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깨달은 것이 있다.
사람의 마음은 나이가 든다고 굳어버리는 지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든의 마음에도 새 선을 그어 넣을 여백은 얼마든지 남아 있다.
다만 우리는 그 여백을 ‘이미 늦었다’는 한마디로 스스로 접어두곤 한다.
무언가를 향해 마음이 설레는 바로 그 순간,
우리 안에서는 이미 새 길의 첫 발자국이 찍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첫걸음은 늘 더디고 외롭다.
처음 잔디를 밟는 발자국이 그러하듯, 새 길의 출발은 희미하고 불안하다.
이 나이에 무얼 새로 시작하느냐는 주위의 시선도,
정말 될까 싶은 마음속 망설임도 그 위에 겹친다.
그러나 길이란 본래 또렷해서 걷는 것이 아니라, 걸어서 또렷해지는 것이다.
그 단순한 진실을 나는 그 잔디밭의 흙길에서 배웠다.
내가 그 잔디밭에서 더 깊이 감동한 대목은 따로 있었다.
한 사람이 처음 디딘 작은 발자국이 다음 사람을 부르고,
그 사람이 또 다음 사람을 불러, 마침내 모두가 함께 걷는 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이 말한 중년기 발달과업인 생산성이 결국 이런 모습 아닐까.
내가 낸 길을 누군가 따라 걷고,
그 길이 보도블록이 되어 다음 세대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새 길을 내는 일은 결코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늦었다고 망설이는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다.
그 잔디밭의 흙길도 처음엔 누구의 눈에도 길이 아니었다.
풀을 처음 밟은 발자국은 희미했지만,
그 한 걸음이 다음 걸음을 부르고,
걸음이 쌓여 흙길이 되고,
흙길 위에 끝내 보도블록이 깔렸다.
길이 있어 걸은 것이 아니라, 걸었기에 길이 된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도 아직 밟지 않은 잔디밭이 남아 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바로 지금, 마음이 설레는 곳으로 가만히 한 발 내디뎌보시기를.
언젠가 그 자리에도 새 보도블록이 깔릴 것이다.
오래전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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