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유머는 저열한 다큐다
수정 2026.05.31 20:12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딴엔 농담이라고 한 말에, 정색하는 사람을 희화할 때 “유머를 다큐로 받는다”거나,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려든다”고 한다. 상대의 농(弄)에 기분이 상하거나 심각해질 때 센스 없다며 ‘퉁박’ 주는 이 표현들은 숨겨진 의도를 알아차린 이에게 주먹질 없이도 침묵을 강요하기에 ‘조용한 폭력’이 된다.
웃는 낯에 침 뱉을 수 없는 노릇이라,
이 조용한 폭력 앞에 어떤 사람은 불쾌하더라도 어설피 함께 웃기도 한다.
학교폭력 피해자 역시, 폭력 사실을 들킨 가해자가 키득거리며 하는 한마디,
“장난친 거예요, 선생님!” 때문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쉽게 말할 수 없다.
조용한 폭력은, 이처럼 실제로 행사된 폭력에 더해 그 폭력을 말할 수 없게끔 ‘입틀막’까지 하는 계산된 폭력이자, 이중의 폭력이고, 그러므로 가장 저급하고 잔인한 폭력이 아닐 수 없다. 그건 양아치 짓이다.
2014년 9월 광화문에서 세월호 참사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하는 유가족 앞에서 벌인 ‘일베’의 폭식 만행에 더해, 이름조차 낯뜨거운 자유대학생연합(자대련)도 ‘장난스러운 만화’로 같은 취지의 조용한 폭력을 웹자보로 홍보하고 실행했다.
이것은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당시 대통령 박근혜의 냉대와 무책임이 만들어낸 결과이자, 최고 권력자가 공개적으로 행한 유가족 모독이 일베와 자대련에게 ‘패륜 허가’로 읽혔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그러나 이 사회가 바닥을 향해 가고 있다는 패배감은 ‘생각하는’ 시민들의 몫이 되었다.
미국의 2017년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 배우 메릴 스트리프는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가 유세 당시 장애를 가진 기자의 화법과 몸짓을 흉내 내며 조롱한 것을 두고 “특권, 힘, 그리고 싸울 능력이 자신보다 훨씬 적은 사람을 권력자가 조롱하고 나설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잃고 만다”며 비판했다.
막대한 권력의 소유자가 소수자, 희생자, 피해자 능멸에 그 힘을 오용할 때,
폭식 패륜에서 목격했듯 ‘뇌 썩음(brain rot)’ 상태에 있는 어떤 이에게
그것은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해도 된다는 허락으로 읽힌다.
그 사회에서 ‘패륜의 도미노’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메릴 스트리프의 “우리는 모든 것을 잃고 만다(We all lose)”는 도미노에 첫 돌을 떨어뜨린 그 권력자에 대한 공동체의 단호한 조치를 촉구한 것이다.
한국 시민은 당시의 대통령을 탄핵했지만, 미국 시민은 트럼프를 다시 대통령으로 앉혔다.
최근 몇년 한 재벌 회장이 기업 홍보를 빌미로 패션이나 음식 취향을 넘어, 장난치듯 이념 성향까지 드러내며 ‘아슬아슬한 재미’를 즐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유머가 아니라, ‘쩐(錢)’권력자의 역사 왜곡을 향한 계산된 폭력이자 패륜 도미노를 시작하는 저열한 다큐였음이 드러났다. 내부 통제나 승인·검토 체계 실패라며 파장을 끊으려 하지만, 총수의 ‘축적된 장난’이 직원들에게는 패륜 허가로 읽혔을 테니, 문제는 시스템 실패가 아니라 우두머리 실패다.
대한민국 시민은 실패한 대통령을 두 번이나 탄핵했다.
정치가 나서지 않아도 실패한 기업 총수에 대해 시민이 단호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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