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아이를 지키려다 아이를 잃는 사회

닭털주 2026. 4. 25. 19:32

아이를 지키려다 아이를 잃는 사회

 

조현경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지난해 11, 한 교사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2022년 강원 속초에서 현장체험학습을 하던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후진하던 버스에 치여 숨진 사고의 인솔 교사였다.

학생들이 버스에서 내린 지 불과 20여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항소심은 1심의 집행유예를 선고유예로 낮췄지만, 교사의 과실은 그대로 인정했다.

올해 1월에도 2023년 전남 목포의 한 병설유치원 숲체험에서 원아가 숨진 사고로 인솔 교사가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메시지는 분명했다.

사고가 나면 교사가 책임진다.”

 

현장의 부담감은 숫자로도 드러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이달 발표한 설문에서 응답 교원의 89.6%사고 발생 시 형사책임까지 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행정 조치도 체험학습 기피를 부추겼다.

2023년 정부가 현장학습 차량을 어린이 통학버스로 신고하도록 의무화하자,

노란색 버스를 구하지 못한 학교들이 줄줄이 행사를 취소했다.

서울 초등학교 현장체험학습 계획은 20235223건에서 20242611건으로 반 토막 났다.

봄은 왔지만, 아이들은 소풍을 가지 못한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저서 나쁜 교육에서 이런 현상을 안전주의’(safetyism)의 함정이라 진단했다. 안전이 신성한 가치로 군림하면, 위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활동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선의의 과보호가 득보다 해를 부르는 역설이다. 땅콩 알레르기를 피하려 땅콩을 멀리한 아이들의 면역계가 되레 약해졌듯, 위험이 제거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더 취약하고 불안해진다.

 

안전주의는 학교 안 일상도 바꿨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금지하고, 쉬는 시간에도 교실 밖 출입을 막는 학교가 생겼다.

아이가 다치면 책임질 거냐는 민원 때문이다.

지난 1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천하람 의원은 민원에 시달리다 보니 학생을 다치지 않게 보호하는 것만을 교육 목표로 삼는 무균실 같은 학교가 됐다고 지적했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도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에서 사고가 났을 때 책임을 온전히 교사가 지도록 한 탓에 기피 현상이 커졌다고 인정했다.

책임이 교사 개인에게 쏠리면서 현장학습은 기피 대상이 됐고,

학교는 아이들을 교실 안에 묶어두고 있다.

광주에서는 지난해 초등학교의 57.8%가 현장학습을 교내 찾아오는 체험행사로 대체했다.

안전을 지키려다 배움의 자리까지 좁아진 셈이다.

 

놀이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다.

아이들은 몸으로 부딪히며 두려움과 한계를 가늠하고,

또래와의 갈등 속에서 규칙과 책임을,

싸움을 중재하고 승복하는 법을 배운다.

부딪히고 갈등하고 화해하는 과정 자체가 배움이다.

그러나 안전주의는 몸의 위험을 지우는 사이 관계를 배우는 자리까지 앗아갔다.

그 빈자리를 스마트폰이 채우면서 두 흐름은 서로를 강화했다.

2011년 전후로 청소년의 자살·우울·자해가 급격히 늘었고,

자살은 13년째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다.

지난 5년간 10대의 항우울제 사용량은 130% 이상, 5~9살의 사용량은 245% 늘었다.

아이들의 마음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경험의 멸종저자 크리스틴 로젠이 지적하듯, 아이들은 몸으로 부딪치는 경험 대신 타인의 경험을 화면으로 소비하는 데 익숙해졌다. 신체적 위험은 눈에 보이지만, 알고리즘이 증폭시키는 비교와 배제, 혐오는 보이지 않는다. 넘어지지 않게 지키려다, 우리는 더 깊고 더 조용한 위험 속으로 아이들을 밀어 넣고 있다.

 

교사들은 이미 한계에 와 있다.

주말에 현장학습 장소를 답사하고 분실물을 사비로 메우면서도,

사고가 나면 형사책임까지 질 수 있다는 공포를 안고 아이들을 인솔한다.

교사 개인이 감당할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지난해 6월 시행된 학교안전법은 면책 조항을 담았지만,

사고가 나면 교사가 법정에서 무고함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은 여전하다.

 

현장체험학습은 교실 밖의 부수적 행사가 아니다.

교과서의 앎이 발밑의 땅이 되는 경험이다.

낯선 곳에서 함께 길을 잃고 작은 사고를 수습하며, 아이들은 어떤 수업보다 많은 것을 배운다. 그 배움은 위험을 감수하는 경험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어른이 모든 위험을 걷어낼수록, 아이가 스스로 위험을 헤쳐나가는 힘도 함께 사라진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아이를 지키는 것인지, 어른의 불안을 달래려 아이의 성장을 담보 삼는 것인지 다시 물어야 할 때다. 용기가 필요한 쪽은 아이가 아니다.

놓아줄 줄 아는 어른, 그리고 그 어른을 외롭게 두지 않는 사회다.

 

gobog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