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도 차별하는 ‘기본소득’
수정 2026.06.08 19:56
강현석 전국사회부 부장
‘농어촌 기본소득, 면 주민 사용불가.’
전남 곡성군 곡성읍 가게들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다.
농어촌 기본소득 가맹점이지만 면 주민들은 읍내 가게에서 사용할 수 없다.
곡성 전체 인구 2만7643명 중 읍 주민은 8032명뿐.
대부분인 1만9611명은 10개 면에 산다.
소멸위기에 처한 농어촌은 그나마 읍을 중심으로 생활 인프라가 유지되고 있다.
주요 관공서와 병원, 상점이 읍에 있다.
도시에서는 흔한 치킨 가게도 대부분 읍에만 있다.
곡성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면 주민들은 기본소득을 받아도 읍내 병원과 약국, 학원, 영화관, 안경점을 제외한 가게에서는 쓸 수 없다. 가맹점의 경우 곡성읍에는 523개가 있지만 고달면은 17개, 목사동면은 16개뿐이다. 그나마도 대부분 펜션 등 숙박업소다.
농촌에서 5일마다 열리는 ‘오일장’에서도 면 주민들은 소외된다.
장날에 맞춰 읍에서 열리는 오일장에 나가 필요한 물건을 사고 이웃들을 만나는 것은 주민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면 주민들은 기본소득으로는 생선 한 마리, 돼지고기 한 근도 살 수 없다.
곡성군은 주민 항의가 빗발치자 ‘기본소득 위원회’를 개최해 지난 4월 기차마을 전통시장에서도 면 주민이 기본소득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 반대로 한 달도 못 가 다시 사용을 제한했다.
정부는 지난 2월 농어촌 지자체 10곳과 2년 한시로 기본소득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농촌 주민들에게 매월 15만원(일부 지역 20만원)씩을 지역화폐로 지급해 소비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소비 증가로 가게들이 새로 생기면 생활 불편이 줄어들어 농촌에도 사람이 머물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런 목표를 위해 정부는 사용지역과 사용처를 제한했다.
정부는 면 주민들이 읍 지역 가게에서 기본소득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하나로마트가 ‘유일한 상점’인 곳이 많지만, 면 지역도 월 최대 5만원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
최대 6개월(읍 3개월) 안에 써야 하는 기본소득을 보고 면에 가게들이 새로 생겨날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 실제 인구가 늘고 몇곳에서 가게가 새로 생기는 등 효과도 있다.
그러나 수십년간 인구 감소로 무너진 면 지역 상권이 2년 사이 읍을 찾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인구 3000명이 붕괴하면 각종 기초 생활 서비스가 사라지기 시작한다고 분석했다. 곡성 10개 면 중 7개 면은 인구가 2000명도 안 된다.
가게가 서너 개뿐인 면에서는 일부 가게들이 기본소득 지급 이후 독과점 지위를 활용해 오히려 가격을 올리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오남균 곡성 오산면 가곡마을 이장에게 물었더니 “우리 면에 기본소득을 쓸 수 있는 곳은 농자재 판매점과 식당뿐이고 새로 문을 연 가게도 없다”면서 “제발 주민들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답이 돌아왔다.
공적 자금이 투입된 각종 ‘공익수당’에서 기본소득처럼 읍과 면을 구분해 사용을 제한한 전례는 없다. 매년 60만~70만원씩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농어민공익수당은 해당 시군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다. 농어촌 기본소득이 그동안 더 외진 곳에서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왔던 면 주민들에게 ‘또 다른 불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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