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급할수록 돌아가기

닭털주 2026. 6. 11. 22:35

급할수록 돌아가기

 

수정 2026.06.10 20:14

 

장동석 출판평론가

 

 

뭐든 심사숙고하는 사람처럼 보이려 애쓴다.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는 한 번 더 생각해보자고 말할 때가 많은데,

부러 조금 느리게 말하곤 한다.

급하게 줄을 서야 할 때도 뛰는 법이 없다.

허술한 사람이라 완벽할 리 만무한데, 운전대만 잡으면 사람들에게 급한 성질을 들킨다.

앞선 차가 조금이라도 늦을라치면 좌우 깜빡이가 요동친다.

성질 급한 사람이 아닌 척하며 살기에는, 세상은 넓고 감춰야 할 일도 많다.

 

<삼국지>에서 성질 급한 사람을 찾자면 단연 장비가 제일이다.

장비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황건적을 제압한 공으로 유비가 알량한 현위 자리를 겨우 얻었을 때였다. 황제의 명이라며 감찰을 나온 관리 독우가 노골적으로 뇌물을 요구했다. 독우는 유비는 탐관오리라고 실토하라며 아전과 백성들을 겁박했다. 처음부터 독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장비는 그를 결박하고는 버들가지로 수차례 내리쳤다. 10여개의 가지가 일시에 부러질 정도로 강도가 셌다.

이후 상황은 미루어 짐작하시리라.

유비 일행은 미련 없이 안의현을 떠났다.

성질 급한 장비로 인해 삼형제는 오랜 시간 정처 없이 떠돌아야만 했다.

 

장비의 급한 성격은 자신의 죽음마저 앞당겼다.

관우가 형주를 사수하다가 오나라의 치밀한 작전에 말려들어 최후를 맞이했다.

비보를 접한 장비는 황제가 된 형 유비에게 도원에서의 맹세를 잊었냐.

둘째형님 원수를 갚자고 눈물로 호소했다.

유비는 오나라와의 담판을 결정하고, 장비는 휘하 병사들에게 “3일 안으로 흰 기와 흰 갑옷을 마련하라고 명한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만의 병사였다.

부하 장수들이 말미를 더 달라고 하자 장비는 그들을 매질했다.

범강과 장달은 술로 마음을 달래고 잠든 장비의 목을 베어 도망쳤다.

고함 한 번으로 중원을 호령하던 장비는 급한 성질 때문에 일찍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7월 초 셰익스피어의 작품 한 편이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적잖은 나이에도 연극 무대를 지키고 있는 배우 신구와 박근형의 출연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베니스의 상인>이다.

이 작품에도 성질 급한 인물이 등장한다.

악랄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다.

기실 샤일록은 철두철미한 사람이었다.

한 푼의 돈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 채무자에게는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결혼을 위해 돈을 빌려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샤일록에게 고운 살 1파운드를 걸고 돈을 빌렸다.

상선이 들어오면 곧 갚을 수 있었으니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선의 귀항은 늦어졌고, 샤일록은 계약에 따라 고운 살 1파운드를 당장 도려낼 기세였다. 이후 상황도 익히 짐작하시리라. 살을 도려내되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는 판결에 샤일록은 아연실색했다. 자신을 비판하는 안토니오를 죽이고야 말겠다는 급한 마음이 여타 생각거리들을 앞질렀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쓰랴라는 옛말이 있다.

절차와 순리를 지키지 않으면 일을 그르치기 쉽다는 의미를 담은 말이다.

성질 급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말이다.

시의적절한 가르침을 담고 있음에도, 누군가에게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이어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까지 덧붙이면, 이제는 세상물정 모르는 꼰대라는 소리 듣기 쉽다.

한 걸음이라도 앞서 무엇이든 쟁취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하 수상한 시절 탓이다.

성질이 급하든 그렇지 않든,

저마다의 생각과 마음이 빛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있겠는가.

각설하고, 오늘 퇴근길에는 성질 죽이고 한 차선을 고수하며 집으로 가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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