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한 문을 나가는 방법
수정 2026.06.11 20:20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참 아슬아슬하게 사는구나.
새벽에 일어날 때 따라 나온 저 생각이 출근길에도 계속 쫓아왔다.
이제 완연히 노후로 접어든 마음의 면적도 그렇고, 왕왕거리는 선거 뉴스도 그런 소식뿐이다.
최근 이사하느라 대학 시절의 길목이던 노량진을 이용하게 되었다.
오늘은 워낙 만원이라 전동차를 두 대 그냥 보냈다.
또 기다리며 문득 공중을 보니 ‘나가는 곳’이라고 화살표가 하늘 쪽을 가리킨다.
안전판에는 이런 문구. “EMERGENCY EXIT DOOR. 非常門. 비상시 사용하는 문입니다.”
지각할 순 없어 안면몰수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 사는 것이 참 비상한 사건.
몇해 전 대마도로 꽃산행 갔을 때의 일. 시작할 때 날씨가 좀 흐리더니 산행을 마칠 무렵 비가 내렸다.
후줄근히 젖어 관광버스의 뒷좌석에 몸을 부리는데 유리창에 세련된 디자인의 빨간 한자가 눈에 들어왔다.
‘非常口’. 가만, 세 글자가 각각 좌우대칭이 아닌가.
이런 풀이가 가능하겠다.
먼저 아닐 非. ‘아니다’는 실은 ‘그렇다’와 아주 잘 통한다.
가령 점방에서 ‘이게 볼펜입니까’ 혹은 ‘이게 볼펜이 아닙니까’라고 물어도 주인은 같은 답을 준다.
항상 常도 마찬가지다. 이건 말뜻 그대로 늘, 똑같이, 영원하다는 게 아닌가.
영원한 건 어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발밑에 있다.
입 口는 좌우는 물론 상하까지도 사통팔달하는 구조다. 이러니 저 말에는 아예 전후좌우로 서로 활발히 통하는 뜻과 길이 글자 안에 대칭적으로 평행하게 들어 있는 것.
가급적 자주 산에 가려 함은 궁극적으로 나의 몸을 분해하여, 먼지로 만들어서라도 저 하늘 비상구로 나가고 싶은 욕망이 은밀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산은 세계의 둘레이자 세상의 한 바깥. 물론 늘 실패다. 그렇게 좌절한 뒤 돌아와 내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데, 저 아득히 먼 곳을 헤엄쳐 온 유리창 밖의 빗방울은 여기로 들어오려고 몸을 짓이기는 묘한 풍경에서 이 세상의 대칭과 평행을 얼핏 보았던 셈인가.
한자는 이 세계의 구체와 추상을 잘 포착하는 상형문자다.
사람을 형용한 것으로 인(人)과 대(大)가 있지만 문(門)도 못지않다.
그야말로 서로 마주 보며 목 내놓고 살아가는 두 사람의 아슬아슬 옆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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