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나임을 증명하는

닭털주 2026. 6. 10. 11:29

나임을 증명하는

 

수정 2026.06.09 20:11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모교 후문엔 조그맣고 오래된 사진관이 있었다.

수십년 전 나의 지도교수님이 유학 떠날 때도 여권용 사진을 찍어주셨다는,

연륜이 느껴지는 사진사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가게였다.

선배들이 입대하거나 원서를 쓰거나 취직할 때 증명사진란에 부착한 것 중 팔 할은 그분의 작품이었을 거다. 나 또한 열아홉 살 이래 항상 거기서 사진을 찍었다. 얼굴이 너무 못생기게 나왔다며 시무룩하던 내게 아니, 학생이 원래 그렇게 생긴 걸 나더러 어떡하라고!” 역정 내셨던 대학원 시절 어느 봄날 전까진.

 

나는 충격을 받았다. 예쁘진 않아도 그 정도로 생겼을 거라곤 짐작 못했으니 말이다. 법철학을 공부하면서도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이라 하소연할 상황이었던 거다. 이리저리 검색해본 후 프로필사진관이라는 데를 찾아갔다.

 

그런 말이 어딨어요?” 자초지종을 들은 내 또래의 사진사가 분개했다.

어떻게 생겼든 보정 기술로 커버할 수 있으니 고객님은 저만 믿으라 했다.

촬영은 1분 만에 마쳤는데 후속 작업만 15분 가까이 소요되었다.

마침내 완성된 사진을 확인하니 거기엔 나 대신 여우가 한 마리 앉아 있었다.

분을 바른 듯 하얗게 바뀐 얼굴에, 눈꼬리는 도끼날처럼 싹 올라가고 입꼬리도 동일한 각도로 쌕 올라간.

야무지게 보이는 게 핵심이라서요.” 사진사는 작품의 의도를 설명해주셨다.

정성을 기울여 세심히 보정해주신 데에 감사했으나 그 사진을 본인임을 증명하는 용도로는 차마 사용할 수 없었다.

지금껏 서랍 한구석에 빛바랜 봉투째 남아 있을 거다.

 

그로부터 몇해 더 지나 독일의 한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할 무렵이었다.

예상 못한 공고를 보고 지원하고자 서류를 준비하던 중, 첫 페이지에 부착할 증명사진이 필요했다. 그곳에 도착한 다음날 체류 허가 신청을 위해 중앙기차역 포토 부스에서 찍은 여분이 몇장 있었으나, 만일 내가 심사위원이라면 보자마자 지원서를 구기고픈 충동이 일 것만 같은, 낮은 해상도의 사진이었다.

고민하다 구시가지의 사진관을 찾아갔다. 촬영 용도를 말씀드리니, 수많은 신진학자를 배출해낸 대학도시의 사진사답게 아주머니께서 마이스터의 솜씨를 발휘하셨다.

각도를 달리해가며 무려 여덟 컷을 찍어주신 거다.

독일인 특유의 진지하고 단호한 표정을 한 채 독일식 억양의 영어로 여기 봐. 나처럼 웃어봐명하시는 통에 마지막 컷엔 나도 모르게 웃음 짓는 찰나가 담겼다.

 

여덟 버전 중 현상할 버전을 하나 고르라면서 아주머니는 그 마지막 컷으로 택하길 권했다.

치아가 보이지 않는 게 증명사진의 정석이라고 어디서 주워들었던지라 망설였더니 만일 내가 학생이라면 이렇게 웃는 사람을 선생님으로 맞이하고 싶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겠어?” 재차 권하셨다. 사진을 확인할 상대는 학생이 아니라 학교 윗분들일 텐데 싶었으나 왠지 그 말씀이 좋았다.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 오늘 자 칼럼의 임시 프로필 사진이 바로 그것이다.

 

신문에 첫 연재물을 게재하자 저자 사진 보고 깜놀악플에 좋아요37개나 달렸을 만큼 촌스럽다는 지적을 받아온,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사진.

십여년 전 아주머니의 바람대로 학교에서 날마다 마주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저렇게 웃는 선생님이자 웃는 동료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