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댓값과 최솟값
수정 2024-03-28 18:48등록 2024-03-28 14:30
이차함수. 본 적이 있으실지? ‘ax²+bx+c’. 그래프로 그릴 수도 있는데, x² 앞에 오는 a가 양수냐, 음수냐에 따라 모양이 정반대로 바뀐다. 예컨대, a가 양수인 y=2x²+3x+1이라는 함수의 x 자리에 숫자를 하나씩 넣어보자. x가 -2면 y=3, x가 -1이면 y=0, x가 0이면 y=1, x가 1이면 y=6, x가 2이면 y=15. 이런 식으로 x의 변화에 따라 y의 값을 구하고, 이를 그래프에 하나씩 점을 찍고 이으면 ‘∪’ 모양의 오목한 포물선이 나온다.
이때엔 포물선의 맨 끝 바닥에 있는 최솟값만 구할 수 있다. 양쪽은 위로 무한히 뻗어나가니 최댓값은 구할 수 없다. 반면에 y=-2x²+3x+1처럼 a가 음수(-2)면 그래프가 ‘∩’ 모양의 볼록한 포물선이 된다. 뒤집힌 포물선에서는 맨 꼭대기에 있는 최댓값만 구할 수 있다.
노약자석은 한국 사회의 도덕적 책무의 최댓값일까, 최솟값일까?
입으로 전해지고 몸으로 실행했던 인간적 도리와 미풍양속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는 이 사회에서 이를테면, ‘늙고 병들고 어리고 약한 사람을 보호하라’는 덕목은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
이제 우리는 개인의 도리와 책무를 나 아닌 누군가(국가와 제도)에게 세금과 함께 떠넘기고, 나는 홀가분하게 자신의 안위만을 돌볼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노인이 내 앞에 서도 일어나지 않는다.
‘당신을 위한 자리는 저쪽에 있으니 그리로 가세요.’
‘할머니, 내가 먼저 앉았네요. 넘보지 마세요.’
약자를 위한 공간이 늘수록 개인의 인간적 도리는 음미하지 않아도 될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묻는다.
노약자석을 모두 없애면 봄쑥처럼 여기저기 자리를 양보하는 개인이 늘어날까?(설마)
늙고 병들고 어리고 약한 사람을 보호하라.
그럴 때라야 노약자석은 한국 사회가 약자에게 할 도리의 최솟값이 된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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