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쉬운 말이 정의다

닭털주 2026. 1. 10. 11:41

쉬운 말이 정의다 [말글살이]

 

수정 2026-01-08 18:56 등록 2026-01-08 15:53

 

 

지난해 7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게시판에 7일부터 열리는 7월 임시국회 집회 공고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2022년 뉴질랜드 의회는 흥미로운 법안 하나를 통과시켰다.

이름하여 알기 쉬운 언어법’(Plain Language Act). 요지는 간단하다.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모든 문서를 쉽고 명쾌하게 쓰라는 것이다.

권고 사항이 아니라 법적 의무이다.

 

이런 법안의 목적은 무엇일까? 한국의 국어기본법처럼 국어 사용을 촉진하고국민의 창조적 사고력의 증진을 도모함으로써민족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과 같은 속 빈 강정이 아니다!’(이 조항부터 쉽게 써야 한다)

쉬운 언어는 정부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국민의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국민이 글을 읽고 원하는 정보를 찾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용자 중심의 언어관이다.

 

이 법이 겨냥한 건 관료들의 뻣뻣한 언어이다.

이를테면 피의자는 주취 상태로 거주지로 이송되었다라는 문장을

그는 술에 취해 집으로 실려 갔다고 고쳐 쓰게 했다.

법률 용어도 마찬가지다.

사기죄를 다룰 때 으레 쓰던 금전적 이득’(pecuniary advantage)이란 말 대신 그냥 ’(money)이라고 쓰거나,

종결하다’(terminate) 대신 끝내다’(end)를 택했다.

 

성과는 놀라웠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묻는 민원 전화가 줄어 행정 비용이 줄었고,

정부를 향한 시민들의 신뢰가 두터워졌다.

어려운 말로 권위를 세우던 공무원들이 쉬운 말로 시민을 섬기기 시작한 것이다.

 

쉬운 언어 쓰기는 언어순화 캠페인이 아니다.

이해하기 쉬운 정보를 제공받을 시민적 권리를 확인하고 지키는 일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야 따질 것 아닌가.

언어가 일종의 권력이라면, ‘쉬운 언어 쓰기는 그 권력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첫걸음이다.

쉬운 말이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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