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놀이

지워지는 개처럼

닭털주 2026. 2. 23. 13:09

지워지는 개처럼

 

수정 2026.02.19 19:59

 

강홍구 작가

 

 

카메라를 메고 거리를 걷다 보면 상상하지 못한 장면들과 마주친다.

그런 장면들은 대개 미술 작품에서 보지 못한 것들일 때가 많다.

현실은 늘 미술가들의 상상력을 넘어선 곳에서 뜻밖의 상황들을 연출하고 보여준다.

거리의 골목에서도 그렇고 철거 중인 재개발 지역에서도, 남쪽 어느 작은 섬에서도 발견된다.

물론 대단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홍대 앞 어느 골목길에서 찍은 개를 그린 벽화 사진도 그렇다.

벽화 속의 개는 얼굴만 겨우 남아 있다.

배경에는 빨래가 널려 있고, 앞쪽에 담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앞발을 담장에 얹고 집 밖을 구경하는 개를 그린 것 같다.

오래된 주택들이 모여 있는 골목에서 흔히 마주치는 장면이다.

 

누군지 모르지만 이 벽화를 그린 작가는 그런 장면을 인상적으로 보아두었다가 그렸을 것이다.

창의적인 작업이 아니라도 보통 사람들이 보아서 즐겁고 익숙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목표였을 것이다.

 

벽화가 온전한 상태였다면 나는 이 사진을 찍지 않았을 것이다.

이 벽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시간이 흐르며 물감이 벗겨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절묘하게.

흰 개는 오른쪽 눈과 코만 남아 겨우 개의 형체를 짐작하게 할 뿐이고 왼쪽 앞발과 꼬리도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다.

마치 누군가 일부를 긁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 결과 드러난 담벼락의 시멘트는 여백이 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라진 것이 무엇인지를 상상하게 한다.

겨우 남은 순한 표정을 한 개의 얼굴은 필사적으로 지워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지워지고 사라진다. 벽화도, 벽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워지고 사라지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노화를 막고,

수명을 늘리고,

이름을 높이고,

재산을 쌓아 물려주고,

재단을 만들어 누군가를 기념하고 기린다.

 

아마도 이름을 남기기 위해 기를 쓰는 대표적인 직업이 정치가들일 것이다.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목표하는 욕망을 이루기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정치가들은 역사가 심판할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특히 자신이 궁지에 몰렸을 때 역사의 법정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면피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듯이 역사는 그들을 심판하지 않는다. 다만 지워버릴 뿐이다. 그런 정도의 정치가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다. 그것이 심판이라면 심판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그것을 역사라고 말하지만, 그것도 따져보면 인간 집단 기억의 파편일 뿐이다. 인간이 사라지면 그뿐인 것이다. 과연 인간은 얼마나 더 오랫동안 지구의 지배적 종이 될 수 있을까? 지금 인간들이 하는 행태로 보아서는 그리 오래갈 것 같지 않다.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 전쟁 등의 여러 상황을 떠올리면 좀 비관적이 된다.

 

인간은 지식이나 지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파멸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

지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지능을 지녔지만 가장 무지하고 잔혹한 종으로 기록되며 자멸할지도 모른다.

마치 벽화 속의 개처럼, 안타까운 눈으로 자신이 사라진 뒤에도 남을 세상을 바라보면서.

한낱 벽화 한 점을 보고 너무 멀리 와버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