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말글살이]
수정 2026-05-28 19:50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말도 사람을 닮았다.
탐욕스럽게 자신의 덩치를 불려 나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잖다’처럼 자신을 비워 최후의 몸무게마저 지우고 기꺼이 다른 무엇이 되는 것이 있다.
처음엔 본뜻을 지킨 채 몸집만 줄인다.
‘두렵지 않다’를 ‘두렵잖다’로, ‘멀지 않다’를 ‘멀잖다’로, ‘적지 않다’를 ‘적잖다’로.
몸집을 줄이다가 마침내 ‘부정’의 의미마저 덜어낸다.
‘내가 말했잖아’는 내가 말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말을 했다는 강력한 긍정이 된다.
부정어 ‘않다’의 성격이 완벽하게 탈색된 자리에,
나와 상대방 사이의 관계를 조율하는 역할만이 채워진다.
“거봐, 집에 사람이 있잖아”라고 할 때의 ‘-잖아’는 그저 상대의 동의를 구하는 다정한 꼬리표로 기능한다.
이 꼬리표가 대화의 맨 앞으로 나와 홀로 쓰이면 마법처럼 속삭임이 된다.
맞은편에 앉은 연인이 살갑게 “있잖아, 자기야”라고 하면,
손에 잡히는 뭔가가 눈앞에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둘이 함께 걸어 들어갈 ‘말의 영토’가 있다고 알려주는 신호다.
결코 화난 목소리로 할 수 없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할 수 없다.
버스에 가방을 두고 내리는 사람에게 ‘있잖아요!’라 하기는 어렵다.
끽해야 ‘저기요’나 ‘여기요’라고 할 수 있을 뿐.
사람도 말을 닮았다.
‘-잖다’가 제 뜻을 비우듯이,
나를 채워줄 것 같던 많은 것들이 아무 쓸모가 없어질 때가 있다.
속이 텅 빈 고목처럼 껍데기만 남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있잖아’가 본뜻을 비워내고 관계를 얻듯,
사람도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나서야 삶의 고갱이를 마주한다.
너와 내가 함께 있다는 것.
그것밖에 없다는 것.
처음 말을 배우듯이 낮은 목소리로 ‘있잖아’라고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