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물로 보다

닭털주 2026. 5. 2. 11:37

물로 보다 [말글살이]

 

 

사람을 하찮게 보거나 쉽게 생각한다는 뜻으로 쓰는 물로 보다라는 표현이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말이 가리키는 뜻이 마음에 들지 않는 때가 있다.

이를테면, 누군가가 당신은 물이야!’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들까?

당신은 꽃이야!’라는 말을 들을 때와 달리, 샐쭉해지는 쪽이겠지?

아마도 사람을 하찮게 보거나 쉽게 생각한다는 뜻으로 쓰는 물로 보다라는 표현 때문일 것이다.

 

비슷한 뜻으로 졸로 보다’ ‘호구로 알다를 쓴다.

’()은 장기판에서 가장 작고 움직임에 제약이 심해서 사람에게 쓰면 깔보는 말이 된다.

호구’(虎口)는 바둑에서 상대방 돌에 포위되고 한쪽만 트인 모양이 호랑이 입을 닮았다는 데서 온 말인데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쓰면 어리숙해서 쉽게 이용당하는 사람을 비유하게 된다. 다른 언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어에서는 말랑말랑해서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뜻으로 푹 익은 연시를 떠올린다.

영어로는 맨날 이용만 당하고도 가만히 있는 사람을 두고 현관 깔판’(doormat)이라고 말한다.

 

그에 비하면 은 얼마나 고상한가. 졸이나 호구, 연시나 깔판과는 차원이 다르다.

물은 어떤 그릇에 담기든 자유자재로 자신의 모양을 바꾼다.

만물에 고요히 스며들 뿐 다투지 않는다.

게다가 사람들이 꺼리는 낮은 곳으로 기꺼이 흘러가니 그 포용력이 진정한 군자의 모습에 가깝다.

그러니 동양에서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최고의 선()을 물에 비유했겠지.

 

우리는 이 을 사람 깔보는 데 써 왔다.

물의 고요함, 유연함, 낮은 데로 향하는 성질이 만만함하찮음으로 읽혔다.

말은 대상의 본질을 담지 않는다.

그걸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을 담을 뿐이다.

시선을 달리하면 얼마든지 다른 뜻으로 쓸 수 있다. 그렇게 바꿔 써도 된다.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물이야!’라고 한다면 샐쭉해지기보다 이렇게 말하리라.

그래, 나 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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