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미련 [말글살이]

닭털주 2026. 3. 7. 12:43

미련 [말글살이]

수정 2026-03-06 06:39 등록 2026-03-05 19:09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실상사 주지 승묵 스님은 세속의 나이로 나와 동갑이다.

그에게서 수식관이라는 명상법을 배우고 비탄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를 못 본 지 십년이 넘었다. 문자를 보내면 절에 한번 다녀가라는 답이 오고,

나는 버릇처럼 올겨울엔 꼭 가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번번이 해를 넘긴 것이 십년이다.

 

언젠가 그와 밥을 먹고 헤어질 시간이었다.

언제 또 볼지 몰라 자꾸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는 한번도 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걸어갔다.

그래, 스님들은 지금에 머문다지. 걸을 땐 걷는다.

나의 미련은 대부분 이런 아쉬움 때문이려나.

 

사전엔 미련을 두가지 뜻으로 풀이한다.

하나는 소처럼 미련하다, 미련한 사람처럼 어리석다는 뜻의 고유어이고, 다른 하나는 미련이 남다,

미련을 버리다처럼 단념하지 못한다는 뜻의 한자어다.

우연히 소리만 같은 동음이의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내 머릿속에선 이 둘이 늘 뒤엉켜 있다.

미련을 못 버리는 걸 보니 미련하군!

 

그도 그럴 것이 한자어 미련’(未練)은 애초에 익숙하지 못하다, 미숙하다라는 뜻으로, ‘숙련’(熟練)에 이르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숙련되지 않으면 마음에 앙금이 남고, 그 앙금이 자꾸 떠올라 생각을 끊어낼 수 없다. 단념하지 못하는 마음은 어리석음과 쉽게 연결된다.

 

우리는 자리에 연연해한다. ‘자리에 미련 없다고 하면서도 자리를 지킬 이유를 찾는다. 대부분 내가 없으면 더 나빠질까 봐’ ‘나라도 버티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알면서도 결행하지 못하는 건 사라질 것에 대한 한 줌 미련 때문이겠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이 미련함에서 오는 것이라면,

미련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아직 삶에 서툴러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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