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이래도 되나?
2월 7일은 잊지 못할거다. 일상이 이렇게 극적으로 변해도 되나 싶다.
어쩌면 내 삶을 내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날이다. 그렇게 성장, 아니면 변화를 가져다 준 날이다.
항상 좋을 순 없지만 더 이상 나쁠 수도 없다는 말,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믿는 것.
그런 말들로 나를 위로하고 버티며 살아왔다.
그래도 다정한 마음으로 세상사람들을 대하면서 살면서 상처받지 않으려고 애쓴다. 내가 착하게 사는 건 다 나를 위한 일이라고. 그렇다고 세상이 나를 착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건 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고.
닷새째 추위가 찾아오고 금요일은 아침부터 눈발이 휘날리고 바람까지 거세게 불었다. 매주 금요일날처럼 9시가 넘어서 집을 나섰다. 내포문화숲길 눈길은 아무도 지나가지 않아서인지 발목까지 눈이 파고 들었다. 그러다 정자가 가까워지면서 발자국이 보였다. 이제 그곳만 밟으면 괜찮겠지, 하고 걷는데 거센 눈바람이 몰아쳤다. 앞이 안개가 끼듯 자욱했다. 천천히 걸었다. 얼음 위를 눈이 폭신하게 덮어 미끄러질 위험은 없지만, 눈이 쏟아지니 어쩔 수 없었다. 조심조심 걷기보다 천천히 걷는 게 맞았다. 마음이 편하다. 발걸음도 가볍다. 편의점에서 산 1000원짜리 털장갑으론 감당하기 힘든 차가움이 밀려왔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빼기를 반복했다. 내리막길은 그래도 조심해야했다. 손을 주머니에서 빼야 했던 것.
도로는 차들이 엉금엉금 기어가다시피 했다. 당진교육청 사거리까지는 무사히 왔다. 어느새 콧물이 조금 흘러내리는 느낌이 마음까지 차고 넘쳤다. 그래도 쉬지 않고 걸어야 했다. 몇 걸음만 옮기면 문예의전당, 아니더라도 청소년문화의거리가 있다고 믿으며 좀더 힘을 냈다.
우와, 이게 웬일. 문예의전당에서 전시를 한다고. 들어갔다. 이곳을 추위를 녹이는 곳이고,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문예의전당 앞 정류장에서 버스 타는 걸 좋아한다. 가는 길에 들리는 곳이어서 더욱 좋다.
입구에서 눈발이 날리는 문예의전당 정원을 찍었다. 10시다. 이젠 10시 5분까지 정류장에서 대기해야 한다. 그런데 예쁜 트리 조각이 여기저기 보였다. 배경을 고려하며 눈덮인 조각을 찍었다. 딱 3개만 찍고 정류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그랬다. 시계를 보니 10시 5분, 그러면 왼쪽 사거리에 버스가 보일 수도 있다고 믿었다. ‘엉금엉금’을 생각하며 여유를 부렸다. 그 시간보다는 늦을거라는 막연한 기대, 상식적인 기대도 했다.
그게 문제였다.
500번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가고 있었다. 소리를 질렀다. 그건 나에게 지르는 안타까움이었다. 기사에게 들릴 리는 없었다. 순간 허탈감이 밀려왔다.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앞으로 걸어갔다. 속으로 ‘그냥 합덕까지 걷자’라고 생각하면서. 발걸음이 씩씩하다는 게 이상했다. 두 정거장을 열심히 걸었다. 그곳에서 한 할머니가 있어서 멈추고 정류장 가림막안으로 들어갔다.
버스 놓치셨죠?
그렇다고.
내심 다른 버스를 기다리는 걸로 희망을 걸면서 물었는데, 그게 무너졌다.
그러시면?
택시를 불렀다고 했다. 아~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다시 무작정 걸어가야 한다고 마음 먹는 순간, 멀리서 510번 버스가 왔다.
이게 뭐지?
할머니한테 인사도 못하고 그냥 버스를 올라탔다. 그냥 자동적으로 “기사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러고 나서 조금 머쓱해졌다.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카톡이 왔다. 오늘 시수업을 들으시는 분이다. 눈이 너무 와서, 다음주로 수업을 미루었으면 한다고. 나는 ‘지금 가고 있습니다.’ ‘아~~~~~’라고 문자를 보내면서, 숲길을 걷고 있는 내 모습과 눈덮인 산과 거리풍경 사진을 올렸다.
이런 날씨에도 외출을 한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보상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왼손을 장갑을 끼고 오른손은 폰을 잡고 주머니에 넣고 걸었던 것.
남부노인복지관에 도착해서 카푸치노 자판기 커피를 옆에 놓고 열심히 그림책을 보는데, 카톡에 오기 힘들다는 글이 올라왔다.
눈송이무리가 발목을 잡으리라고는 예전엔 미처 몰랐네요. 대중교통으로 출석하기엔 지금 상황으론 무리네요. 문집 만드는 작업에 참여할 수 없음에 큰 아쉬움은 남지만, 다음 수업에 연이 이어지길 기대하겠습니다. 3주동안 금요일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 고생 많으셨는데~~ 오늘 함께 못해 죄송합니다^^
시를 알아가는 과정이~~ 다음에 다시 뵙길 소망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나는 답글을 달았다.
넵~ 알겠습니다. 아쉽고 그렇습니다.
그러고는 빨간 장갑 그림책 사진을 찍어 올렸다.
“어느 추운 겨울날 아침, 빨간 장갑 한 짝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 사진 두 장을 더 올렸다. 마지막 그림책 장면으로는 이랬다.
“함께한 시간은 사라지지 않아.”
세상 모든 장갑 한 짝에게 전하는 따뜻한 인사
점심을 먹고 눈길을 걸어 우강사랑채 소들빛 작은 도서관에서 문집 만드는 수업을 했다.
버스를 못 탔다면, 걸어가고 있었을까?
택시는 타지 않았을 것 같다. 5만원 남짓 하니까. 그것도 눈길이라 더욱 느리게 갔을거라고.
한편으론 무슨 수가 있겠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걱정이 깊어지기전에 버스가 와서 너무 다행이었다.
세상은 참 알 수 없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겹친다. 역시 시간이 해결해주진 못할지 모르지만, 마음은 다질 수 있다. 그게 내 마음이다.
오늘 소들빛작은도서관 창작시모음집은 5번째다. 작년 1월부터 시작해서, 올해 2월까지.
평생 잊지 못한 시집이 되었다.
2025.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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