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인가

닭털주 2025. 3. 7. 20:26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인가

입력 : 2025.03.05 20:51 수정 : 2025.03.05. 20:57 전재학 전 인천 산곡남중 교장

 

 

철학자 게르트 아헨바흐는 나이와 나이 들어감에 관한 19세기의 금언과 속담을 500개 넘게 수집해 책으로 엮었다.

그는 그 책에서 이렇게 단정했다.

 

여러 민족의 속담 522개 중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표현은 하나도 없었다.

확실히 이 비슷한 것조차 없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정말 현대인들의 표현이다.

그것이 존중해야 할 서민의 지혜또는 길거리의 지혜인지는 좀 더 살펴봐야 한다.

세련되고 제법 그럴듯하게 들리는 표현이라고 해서 삶의 참된 지혜를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이 표현도 마찬가지다.”

 

한 해 한 해 나이 들어감을 신체적·정신적으로 동시에 느껴가는 요즘, 과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일까하는 성찰에 잠기곤 한다.

아헨바흐가 언급하는 격언들은 대부분 노년의 품위 혹은 문제에 관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자기 나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희화화하는 말도 있다.

아헨바흐는 한 풍자시를 인용한다.

 

네가 늙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웃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네가 늙었는데도 절대로 늙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웃는다.”

여기서 바로 늙은 어린이’(또는 애늙은이’)라는 말이 나왔음을 알게 된다.

실제로 현실에서 많은 사람은 여전히 아기 피부에서 회색빛 머리칼이 나고 평생을 어린이 신발을 신고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외적으로 늙고 백발이 되었지만 인생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해 여전히 미숙한 아이처럼 행동한다.

 

자기 나이를 인정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나이와 그에 따른 중요한 인생의 단계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에게도 좋지 않음은 물론이다.

 

최근 현대인들에게 의미 있는 삶을 생각하게 해서 다시 찾게 된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생론>에서 자기 나이에 어울리는 정신을 갖지 못한 사람은 노년에 모든 것이 불편하다고 한 볼테르의 말을 인용했다.

 

이에 대해 아헨바흐는 예전에는 실제 자기 나이에 맞게 사는 것이 지혜로 인정되었고 그 외의 것들도 나이가 채워야 할 여러 가지 기대들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와 반대로 현대인들은 젊게 보이려는 노력밖에 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우리는 나이 들어감에 따라 삶의 단계마다 존재하는 기회와 위험들을 알고,

그것을 미래를 위해 사용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성숙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이 땅에서는 성숙하고 지혜롭게 나이 들어가는 긍정적인 모습을 찾아보기가 매우 어려워 안타깝다. 이는 아마도 많은 사람이 젊음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요즘 우리 사회에는 나이 들어 젊은이들의 존경을 받고 사표가 될 만한 어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는 아직도 젊어서의 출세와 성공 지향의 가치에 노욕까지 겹쳐 자신만의 안위를 우선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기 때문이지 않을까?

 

성장하는 노년’, 이는 사람들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관이자 철학이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은퇴를 앞두거나 은퇴한 사람들, 인생의 새로운 단계를 제때 준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함께 생각해 보고 또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우리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나이 들어감에 따른 생각과 행위가 보다 더 포용적이어야 한다.

이는 모든 크고 작은 하천의 물길을 하나로 모으는

드넓은 바다와 같은 노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도 더 많은 이들이 이런 노년의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여유와 지혜, 포용력이 함께하기를 소망하고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