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기묘한 ‘서민’ 의식 [조형근의 낮은 목소리]
수정 2025-03-05 08:49 등록 2025-03-05 07:00
일러스트레이션 노병옥
조형근 | 사회학자
학계 시절 교수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간혹 이질감이 들 때가 있었다.
돈 잘 버는 친구를 만났더니 “가난한 교수에게 쏜다”며 술값을 내줬다든가,
“교수는 서민이라 살기 힘들다”는 유의 이야기를 들을 때였다.
듣는 ‘시간강사’들이 민망해졌다.
교수와 가난과 서민은 내가 끝내 적응할 수 없는 낱말의 조합이었다.
물론 교수도 사정이 같지는 않다.
직급, 전공, 소속 대학, 물려받은 자산에 따라 차이가 크다.
그래도 교수의 평균 연봉이 대략 1억원이라면 2024년 기준 근로소득자 상위 7% 이내의 고소득이다. 연구활동비, 발표토론비 등 기타 수입도 있고, 맞벌이도 많아서 실제 가계소득은 훨씬 큰 경우가 흔하다.
자신이 중산층도 못 되는 서민이라고 여기는 대학교수의 자의식은 기묘했다.
교수들은 왜 그럴까? 그들이 비교 대상으로 삼는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에 비해, 또 학부만 나온 대기업 직장인에 비해 소득이 낮은 데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탓일 수 있다.
씀씀이도 이유일 듯하다.
사비로 비싼 외국 책을 사거나 학회, 답사 등 해외여행을 해야 할 일이 드물지 않다.
문화비 지출도 많고, 자녀 유학 등 교육비 지출도 많다.
집이 서울인 지방대 교수는 주거비도 이중으로 든다.
역사적인 이유도 있지 않을까?
지금의 교수들은 대부분 대학의 민중 지향성이 강했던 1980~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다. 그 부채의식이 남아 서민적인 마음가짐만은 간직하고 싶어 하는 것도 같다.
마침 대학교수인 페이스북 친구의 글이 딱 이 주제였다.
해외여행 이야기가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게 불편하다는 글을 읽고 쓴 소감이었다.
해외여행이 일상사인 좁은 세계 속에서 살아온 탓인지 누군가는 그걸 과시적 소비로 여길 수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단다.
대학원생 때는 “교수가 제일 가난하지” 같은 말을 하는 교수에게 화가 났지만,
지금은 동료가 그런 말을 하면 고개를 끄덕인다고.
문학의 쓸모는 타자에 대한 공감이라고 믿었지만, 어느 순간 젠더나 섹슈얼리티의 타자, 심지어 비인간 타자에게는 관심이 가도, 계급적 타자에게는 그렇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내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만 진보적이며, 약간의 기부로 부채감을 퉁치고 마는 패션 좌파가 된 것은 아닐까 자문하고 있었다.
그의 진중한 성찰을 읽다가 얼마 전 처와 노후 대책을 의논하면서 주택연금을 받으면 그리 힘들지는 않겠다며 안도한 일이 떠올랐다. 마흔 중반까지도 자가는 꿈꾸지 못했는데 어쩌다 삶이 변했다. 서울 전셋값 폭등에 쫓겨 경기도 외곽 아파트를 할인 분양받아 이사 온 게 십여년 전이다.
시간이 가도 아파트는 분양가 회복을 못 했다.
그사이 우리는 이웃살이에 빠져들었고, 결국 이웃 생활의 중심지에 땅을 샀다.
땅은 빚으로 샀지만 건축비는 무대책이었다.
어떻게 되겠지 했는데 문재인 정부 때 아파트값이 치솟았다.
심지어 여기까지 집값이 좀 올랐다. 그 덕에 집 팔아 작은 집을 지었다.
소 뒷걸음질에 쥐 잡은 격이다. 그리고 다행이라며 안심했다.
그 폭등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가슴이 멍들었던가?
성찰의 글을 읽다 보니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졌다.
당시 아파트값 폭등으로 자산이 불어난 이들이 제법 된다. 이들도 교수처럼 기묘한 서민 감각이 충만한 듯하다. 달랑 집 한채 가졌을 뿐이라며. 이들이 세금으로 고통받을까 정치권이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상속세 면제 한도를 10억원에서 18억원으로 올리자고 제안했다. 여론이 시끄럽길래 민주당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몇곳에 들어가봤다. 열성 지지자 커뮤니티는 예상대로 대찬성이었다. 취미 커뮤니티들의 반응이 충격이었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자기 일로 대환영이었다. “아파트값 오른 게 얼만데 진작에 한도를 올렸어야 했다”거나, “이참에 증여세도 인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난무했다. 상속세 내려고 집 팔아야 했던 서민의 ‘아픔’을 덜어주는 신의 한 수라는 칭송이 자자했다.
이 조치로 가장 큰 이익을 얻을 10억~18억원 사이 아파트는 압도적으로 서울,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강남은 초고가 지역이라 오히려 적고, 소위 ‘마용성’으로 상징되는 ‘중상급’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고. 언론은 국민의힘 지지층을 겨냥한 조치라고 보도하는 듯한데,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이 서울 수도권 고소득 상위 중산층으로 바뀐 지 꽤 됐다. 산토끼와 집토끼를 모두 기쁘게 하려는 양수겸장은 아닐까?
윤석열의 내란 이후에 자신이 갑자기 보수가 된 것 같다는 이들을 자주 본다. 본디 진보 성향이었건만 내란에 맞서다 보니 어느덧 기존 헌정 질서를 지키려는 보수가 된 것 같다는 말이다. 이해가 된다. 이재명 대표는 아예 중도 보수 선언을 했다. 나는 중도층에 안정감을 주기 위해 헌정 체제 수호, 국가와 민족 공동체의 통합, 국방력 강화 등을 다짐한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상속세 면제 한도 인상은 물론 반도체산업 노동시간 규제 완화, 상위 1%쯤의 금융소득자에 대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가상자산 과세 유예, 종합부동산세 완화, 연금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이 중도 보수라는 것이다.
검토한다는 의제가 모두 부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들이다.
서민의 땀과 피와 눈물 위에서. 이렇게 두 거대 정당이 감세와 규제 완화 경쟁에 나섰다.
땀 흘려 일하면 연소득 1500만원만 넘어도 근로소득세를 낸다. 상속은 10억원을 받아도 세금 한푼 안 낸다. 면세 한도를 내리기는커녕 아예 18억원으로 올리자는 민주당이 정강에서는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평등한 기회를 갖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단다. 상속과 금융투자에 대한 우대 앞에 차별받는 노동의 모습이 안쓰럽다. 이참에 강령도 바꾸면 어떨까?
지금은 내란 막기에 힘을 모아야 하니 ‘탄핵 이후의 세상’ 같은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들 한다. 주로 민주당 쪽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래놓고 자기들은 탄핵 이후의 세상을 거침없이 그리고 있다. 내란을 막자면서 왜 부자가 더 잘사는 세상을 만들자는지 모르겠다. 내란을 막자면서 왜 당신들이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윤석열은 나쁘지만, 세상의 고통이 모두 그의 탓은 아니다.
어떤 슬픔들은 당신들에게서 나온다. 지지하거나 묵인하는 우리의 응원을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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