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와 가? [말글살이]
수정 2025-10-30 18:41 등록 2025-10-30 18:3

지난 9일 오전 무등산 정상부 인왕봉 전망대를 향해 탐방객들이 계단을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당신은 언제 ‘오다’를 쓰고 언제 ‘가다’를 쓰는가?
아마 말하는 자신을 기준으로 바꿔 쓰겠지.
누군가 내 쪽으로 오면 ‘오다’, 내가 다른 쪽으로 가면 ‘가다’.
아빠가 “집에 언제 올 낀데?”라 하고 딸이 “응, 인자 갈 끼다!”라고 했다면,
둘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안다.
아빠는 집, 딸은 밖. 이걸 말을 배우는 아이는 다르게 쓴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엄마한테 전화할 때면, “엄마, 어린이집 언제 가?”라고 한다.
이런, 이런! 어린이집에 있는 자기한테 엄마가 가는 건데도, 언제 오냐고 하지 않다니.
‘언제 와’라고 쓰라 해봤자 헛일이다.
성인은 ‘오다, 가다’를 ‘말하는 사람(나)’을 기준으로 쓰는데,
아이는 그 기준이 ‘나’였다가 ‘듣는 이’였다가 ‘목적지’였다가 왔다 갔다 한다.
그럼 어른은 ‘오다, 가다’를 확고하게 쓸까? 가끔 다르게 쓴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조금 늦었다.
친구가 당신에게 전화로 “어이 친구, 다 와 가?”라고 물으면, 당신은 뭐라 답할 텐가?
“다 가 가”라고 안 하고, “다 와 가!”라고 할 거다.
마찬가지로 등산하는 사람이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에게 “정상이 아직 멀었나요?”라 물으면,
“아뇨, 다 와 가요”라고 말한다.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은 꼭대기를 기준으로 다 와 간다고 하는 것이다.
미국 영화를 보면 분명히 ‘가자!’라고 자막이 달렸는데,
영어로는 ‘come on’ ‘come with me’라고 말한다.
우리는 ‘말하는 나’를 기준점으로 삼는데,
영어는 화자뿐만 아니라 목적지도 기준이 될 수 있다.
어른이 돼도 아이처럼 기준점을 옮겨 다닌다.
쉽게 튀어나와 그렇지, 말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 오묘함과 유연함을 본받아 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