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북향민 [말글살이]
수정 2025-10-09 19:03 등록 2025-10-09 16:12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나는, 3주 전 칼럼에서 탈북민을 ‘북향민’으로 바꾸자는 정부 당국의 제안에 대해
구조적 차별을 외면한 채, 말만 바꾸는 것은 시혜적 행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었다.
이 칼럼에는 비판받을 지점이 많은데, 세 가지만 쓴다.
첫째, 나는 이 글에서 말을 경계 짓기의 도구로만 보았다.
말은 이 세계에 경계선을 긋는 동시에 새로운 연결선을 만드는 실천이기도 하다.
말에는 의미를 재구성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힘이 있다.
새로운 이름은 누군가를 달리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는 그 가능성을 외면했다.
정부 당국의 모든 명명을 시혜적 행위로 단정하고
명명 작업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장관의 아집으로 몰아세웠다.
지나치게 단순했다.
둘째, 나는 말을 바꾸기 ‘전에’ 세상을 바꾸라고 했다.
현실을 그대로 놔둔 채 말만 바꾸면 현실을 호도하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바꾸는 일과 언어를 바꾸는 일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차별적 명칭을 바꾸는 일은 현실의 변화를 앞당기려는 사회적 실천일 수 있다.
그걸 놓친 나는 여전히 경직되어 있다.
셋째, 무엇보다 당사자들의 의지를 충분히 듣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정부 정책의 대상이나 수혜자로만 보았다.
그러나 탈북민 내부에서도 오래전부터 용어 전환 논의와 요구가 있었다.
10월1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린 북향민 박예영씨에 따르면 당사자들도 원한다고 한다.
나는 ‘당사자의 간절한 요구가 아닌,
호의에서 출발한 시혜적 명명에 시큰둥하다’고 썼는데,
당사자의 간절한 요구가 있다면 나의 주장은 깨끗하게 철회되어야 한다.
나는 그들의 노력을 알아보지 않을 정도로 게을렀다.
하여, 나는 이제부터 북녘에서 온 동포를 탈북민이 아닌 ‘북향민’으로 쓰기로 한다.